괜찮다는 말은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는 무서운 것이 많아 자주 숨을 몰아 쉽니다. 문득 떠오른 단어 하나 하나가 작지만 선명한 면도날이 되어 몸 안팎을 가르고 지납니다. 진짜가 아니란 걸 알지만 통증은 날카롭기만 합니다. 이 투명한 고통은 누구에게도 도움 받을 수 없어 혼자 견뎌야 합니다. 오늘도 몇 번이고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주저앉았습니다. 숨을 몰아쉬며 괜찮다고 말합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신통력을 잃은 주술사의 주문처럼, 아무리 되뇌어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말을 무력하게 반복합니다. 차가워진 손 끝을 비비며, 말에 취해 고통을 잊으려 합니다. 그렇게 앓고 나면 저는 조금 더 흐릿한 존재가 됩니다. 당신은 저를 볼 수 있을까요. 매일 투명도를 0.1씩 늘리듯 몸이 점점 흐릿해집니다. 미미한 차이지만 지난주, 보름, 한 달 전과 비교하면 보이지 않던 몸 너머가 점점 선명하게 보이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제 몸이 흐릿해질 수록 너머의 무언가는 선명해집니다. 저조차 차이를 느낄 수 없게 점점 투명해지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다면, 그 증발을, 빈자리를 누가 알아줄까요. 누가 저를 기억할까요. 그러니 기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기에 스스로를 남겨야 합니다. 의미 같은 건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제 삶에 의미라니, 너무 염치 없지 않나요. 무의미함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게 너무 벅찬 이야기입니다. 당연한 걸 따졌다면 이미 견딜 수 없었을 겁니다.

어떤 주석도 붙지 않은 죽음과 주석이 필요 없는 죽음 사이에서 어느 쪽이 저에게 어울릴까요. 어제는 그런 하루였습니다.

2023.10.31.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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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을 잘랐습니다

2023. 12. 29. 23:49 /2015-

오늘도 유서처럼 편지를 쓰다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늘 먼저 이별하는 사람입니다
보내지 못할 글을 적으며
다음엔 어디서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할지 막연해집니다

지난 밤 꿈에선 제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마다 잠이 깨는 건 다독여줄 사람이 없어서일까요
귀마개를 뺀 세상은 시끄럽고 귀마개를 낀 저는 소란스럽습니다
모두 소음 때문이라고 거짓말합니다

어떤 계절이 절 반겨줄까요
아이들의 이름엔 부모의 바람이 담겨있어
평생 주문처럼 불리며 살아간다는데
불러주는 이 없는 제 이름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궁색하게 빌린 행복이 갚지 못할 슬픔이 되어 돌아옵니다
조금만 가난하게 슬플 순 없을까
오늘은 충분히 울었다 생각했는데
꿈에서도 저는 슬픔을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2017.10.20.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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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좀처럼 틀지 않던 전기 스토브를 켰다. 방이 온기가 돌길 기다리며 포트에 물을 데워 따뜻한 차까지 마셔보았지만 몸은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았다. 냉기로 가득 찬 풍선 하나를 집어 삼킨 듯 몸 안에 빈 공간이 느껴졌다. 가슴 정 가운데,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깊이에 손바닥 두 개가 위아래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 정확한 위치와 그려 보일 수 있을 만큼 선명한 느낌이었다. 큰 수술을 하며 몸에 구멍을 냈던 사람들은 전보다 더 춥게 느끼곤 한다는데, 그새 작은 구멍이라도 생긴 걸까. 다급하게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내던 스토브는 목표 온도를 달성한 뒤 조금씩 움직임이 더뎌졌다. 코끝으로 드는 숨은 확연히 따뜻해졌지만 몸 안으로 스미지 못한 채 쫓겨나듯 밖으로 나갔다.

답장은 하지 않아도 돼. 네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어보았다. 한 번도 한 적 없는 말이었다. 넌 늘 다음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답장 기다릴게, 라는 말을 어쩜 매번 그렇게 돌려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너의 끝인사는 매번 다른 문장이었다. 동시에 그건 네가 다시 편지할 거라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답장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너의 말이 정확히는 답장을 하지 말라는 뜻이고, 네 편지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뜻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왜 우편으로 편지를 보내는 거야, 메시지까진 아니더라도 이메일도 있는데. 주고 받는 사이에 시간이 생기니까, 여백이 없는 건 뭔가 불편하더라고.

여백, 행간, 채워지지 않은 채 남은 무엇. 네가 좋아했던 것들이 난 어렵기만 했다. 왜 의사소통 사이에 굳이 빈 공간을 만드는 걸까. 더 정확히 빠르게 할 수 있는 말을 왜 애둘러 시간을 두고 전하는 걸까. 왜 더 채우면, 가까워지면 안 되는 걸까.

너의 마지막 편지를 받은 날, 난 답장 대신 너의 집을 찾았다. 너라면 분명 모든 준비를 끝내고, 그러니까 내가 편지를 받기 전에 이미 떠났을 것이다. 알고 있지만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여백이니 행간이니 하더니, 마지막엔 혼자 주석을 붙이다니. 빈 집이라도 찾아가 너무 비겁하지 않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짐은커녕 그 흔한 옵션용 가구 하나 없이 방은 고스란히 맨 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부엌 공간과 화장실까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지만 벽지 곳곳엔 아직 낫지 않은 상처처럼 오래도록 물건을 둔 흔적이 남아있었다. 매트리스가, 책상이, 작은 책장과 수납장, 옷걸이와 벽에 기대어 놓고 쓰던 거울이 있던 자리까지. 얼마 전까진 누군가 여기 살았다는 걸 입을 모아 증언이라도 하듯 빛이 덜 바란 벽지들이 네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겨우 며칠 비워둔 걸텐데 바닥은 한 번도 온기를 뗀 적 없는 것처럼 차가웠다. 이대로 두면 동파할텐데, 방 주인은 와보긴 한 걸까. 싱크대에 물을 틀자 짧디 짧은 겨울 잠을 끝낸 수도꼭지가 몇 번의 기침 끝에 물을 쏟아냈다. 동파하는 것보단 낫겠지. 간신히 흐를 만큼만 물을 뱉어내는 수도꼭지를 한참 바라봤다.

가구와 더 이상 쓰지 않을 생활용품을 치우고, 자잘한 짐을 정리하면서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많던 화분은 어디로 흩어졌을까. 누구에게 갔을까. 책은 중고서점에 팔았을까, 아니면 폐지와 함께 내놓았을까. 혹시 모를 마지막 순간은 누구에게 부탁했을까. 왜 그 사이 한 번도 연락하지 않다가 이제야 편지를 보낸 걸까. 너에게 마지막 편지가 무슨 뜻인지 모를 리 없는 내게, 넌 왜 끝까지 물음표만 찍게 한 걸까.

네가 남긴 진짜 주석은 편지가 아니라 방이었다. 편지만 읽었다면, 굳이 마지막 문장에 담긴 뜻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애써 확인하고 답답해하는 건 하릴없이 내 몫이었다. 넌 그걸 알기에 편지를 보냈겠지. 아무도 읽지 않은 문장엔 행간 같은 건 생기지 않으니까. 끝까지 네 독자는 나 하나였으니까.

프레임도 없이 매트리스만 놓였던 자리에 주저앉아 크게 숨을 들이켰다. 한껏 짧아진 햇볕에도 텅 빈 방을 부유하는 먼지는 잘못 켜진 연말 장식처럼 반짝였다. 얼마 전 이순신 장군이 내쉬었던 숨이 지금도 남아있을 확률에 대해 해 한 과학자가 이야기하는 영상을 본 적 있다. 전설처럼 멀게만 느껴지는 이순신 장군의 숨결도 아직 남아있을 수 있다는데, 며칠 전 떠난 네 숨결쯤이야 훨씬 더 많이 남았겠지. 이 방이 네가 남긴 주석이라면, 어떤 여백도 없이 내 몸 가득 채우고 싶었다. 가구에 가려 그동안 본 적 없던 깨끗한 벽과 경계, 미세하게 긁힌 바닥 자국, 착각에 가까운 미약한 체취, 제대로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미미하지만 분명 네가 남긴, 이 방이 기억하는 사사로운 모든 것.

차갑고 텅 빈 방 한 켠에서 해가 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집주인이든 방을 보러 온 사람이든, 누구라도 갑자기 들어온다면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문을 닫고 나오면서야 그런 생각을 했다. 골목을 빠져나와 버스를 타고, 환승을 하기 위해 내려 다음 버스를 기다리면서 문득 뭔가 깨달은 사람처럼 춥다, 생각했다. 한기는 손끝과 귀부터 시작해 빠르게 온 몸을 덮쳤다. 추위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잠깐 꺼져 있던 전원이 서서히 켜지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난방부터 켰지만 몸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내가 집어삼킨 풍선은 얼마나 오래 부피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무리 조심해 봐야 겨우 풍선인데, 바람이 빠져 작아진 뒤엔 어떻게 널 채울 수 있을까. 네가 보낸 편지들을 꺼내 하나씩 다시 읽었다. 그새 조금 작아진 풍선에 다시 바람을 밀어 넣기를 한참. 과속방지턱 앞에서 급하게 속도를 줄이는 자동차럼 마지막 편지에 이르러 멈칫했다. 답장은 하지 않아도 돼. 결말은 바뀌지 않았고, 밀어 넣었다 생각한 바람은 풍선 주변만 맴돌다 맥 없이 흩어졌다.

노트북을 켜 언제 마지막으로 실행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문서 프로그램을 틀었다. 가만히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다 너의 이름을 적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인삿말을 썼다. 그리곤 신기할 정도로 오래,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다. 난 너에게 참 많은 얘길 했는데,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아직 한 번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다. 아무도 읽지 않을 문장이라 행간이고 의미고 어떤 것도 생기지 않겠지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밖에 없었다. 네가 남긴 물음표에 길고 긴 답을 다는 건 언제나 나의 일이었으니까. 네가 그랬듯 내게도 마지막 주석이 필요하니까. 이번엔 정말 어떤 여백도 틈도 없이 빼곡하게, 너의 행간을 메워야겠다.

2022.12.26.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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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했던 말을 기억하시나요. 가끔 궁금합니다. 적지 않은 말을 주고받은 것 같은데, 그중 서로의 기억에 남은 건 얼마나 될까요. 까마득한 강 건너편까지 종이비행기를 날리겠다며 애쓰는 사람처럼 신중히 말을 고릅니다.
어제는 많이 울었어요,라고 차마 하지 못해 어제는 유난히 춥지 않았나요, 같은 말을 합니다. 겹겹이 쌓인 포장을 뜯고 뜯어도 끝내 나오지 않는 선물처럼, 겨우 고른 말을 모두 흐트러뜨리고 저를 숨길 말만 쌓아 보냅니다. 어리석은 짓인 걸 알지만 제게 말을 구분하는 건 여전히 너무 어려운 일이라, 끝에 남는 건 가장 가벼운 말 뿐입니다. 그러니 혹여나 친절한 바람 덕에 강 건너편까지 비행기가 닿는데도 그건 저와 강 건너만큼 먼 이야기일 겁니다. 
얼굴과 이름을 모두 선명히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적어집니다. 몇 명이나 저를 기억할까요. 저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 중 제가 잊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어쩌면 누군가 지금, 제게 던질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진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면 기대보다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 이유는 왤까요.
비행기가 되지 못한 채 구겨져 바닥에 버려진 종이에서 저를 찾습니다. 저를 담은 말은 그렇게 바닥을 나뒹굴고, 점점 잊히다 결국 저와 가까운 말은 한 문장도 남지 않을 겁니다. 그동안 제가 잊은 말들은 어디로 굴러갔을까요. 강물에 해져 종이도 말도 아닌 무엇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말이 저 강물 안에 흩어져 있을까요.
종일 신중히 골라 고이 접은 비행기 하나를 발치에 내려놓습니다.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가 비슷한 색감의 종이 한 장을 듭니다. 비행기,라고 부르기엔 왠지 부끄러운 무엇을 접어 힘없이 던져봅니다. 공중에 작은 리본 하나를 그린 비행기는 강물 위에 떨어져 그대로 멀리, 빠르게 사라집니다. 그 모습을 하염없이 보다 고개를 숙이니 발치엔 널브러진 종이 몇 장뿐입니다. 아무것도 담지 못한 포장이 또 한 겹, 두꺼워지는 겨울입니다.
20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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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

2023. 11. 29. 23:32 /2015-

오래 전 문을 닫은 작은 슈퍼 앞, 지나가는 사람조차 드문 이곳에 이젠 마실 수도 없어진 음료 캔들을 가득 끌어안은 채 홀로 서 있다.

분명 여기 오기 전, 하다못해 오던 날의 기억 하나쯤은 있을 법한데, 마치 여기서 조립되어 처음 전원이 켜진 것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건 이곳의 풍경뿐. 해와 달이 뜨고 지고, 비나 눈이 내리고, 일 년에 몇 번인지 셀 수 있을 만큼 적게 사람이 오가는, 신기할 정도로 달라지지 않는 골목 어귀를 하릴없이 바라본다.

아주 오래 전, 처음 눈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누군가 나를 찾아오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젠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 돼 제대로 작동할 자신도 없다. 그 와중에 선명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판매중’ 붉은 세 글자는 낙인 같기만 하다.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 큰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다. 몸 안에 캔을 다 비우면 이 글자도 꺼질까. 스스로 마셔 없앨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내가 끌어 안은 건 물론 내 몸의 일부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음료를 넣어주던 사람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 사람은, 아니 처음 내 몸에 불을 켠 사람은 나를 왜 여기 둔 걸까. 기억하지 못할 뿐 이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갔을까. 지금은 문을 닫은 슈퍼도, 한 때는 손님으로 붐비던 때가 있었을까. 아마 나를 켠 사람은 이 슈퍼의 주인이었을 텐데, 가게는 문을 닫았으면서 왜 나는 끄지 않은 걸까. 홀로 버틸 수 있다 생각했을까. 내가 쓰는 전기가 아깝지도 않나. 내가 켜져 있는 걸 알긴 할까.

하루의 한 걸음이라도 걸을 수 있다면 여기가 아닌 어디라도 갔을 텐데. 조금이라도 사람이 더 오가는 곳으로 가거나, 아직 문 닫지 않은 가게 앞으로 가거나, 골목이라도 벗어나거나, 적어도 방향이라도 틀어서 다른 풍경이라도 보았을 텐데.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할 수 없는 일을 갈망했다. 그때부터 시간은 점점 더 더디게 흘렀고 흔들릴 리 없이 몸 안에 음료 캔들이 자꾸만 덜그덕거리며 나를 탓했다.

사실 난 자판기가 아니라 가로등이 아닐까. 제대로 작동하는 거라곤 전면부에 달린 작은 형광등 몇 개가 전부다. 불빛 아래 음료 캔은 아무 의미가 없고, 난 그저 해가 진 뒤 좁은 골목에 더 좁은 주변만 밝히고 서 있다. 지폐든 카드든 어떻게든 결제를 하고 음료 캔을 내어 본 기억은 까마득하기만 한데, 어쩌면 그건 기억이 아니라 꿈이나 상상이었나 보다. 스스로를 자판기라 착각한 가로등의 망상 같은. 끌어 안고 있다고 생각한 건 음료 캔이 아니었고, '판매중'이라는 세 글자를 밝힌 적도 없고, 모두 내 착각이거나 혹 있더라도 누군가의 실수, 아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인테리어의 일부라고. 시간이 더 흘러, 아니 당장이라면 불이 꺼진다면 나는 무엇이 될까. 가로등도 아니고, 마실 수 없게 된 음료 캔만 가득 끌어안은 채 ‘판매중’이라며 책임질 수 없는 말만 반복하는 네모낳고 거대한 캔이 된 나는, 무엇일까.

202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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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훌쩍 넘었음에도 신기할 정도로 골목마다 사람이 적잖았다. 아 성탄절이지. 늦은 시간 함께 집으로 향하는 연인들을 보며 새삼 성탄절을 실감했다. 순간 너무 자연스러운 연상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요셉과 마리아도 밤이 늦도록 방을 찾아 헤맸다고 하니 이만큼 자연스러운 연상도 없구나 싶었다.

주택가를 나와 도로로 나가니 사람이 더 많았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또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을 보다 마냥 낯설지 않은 곳이 있던가 싶었다. 학창 시절을 모두 보낸 동네를 가도 내가 걸었던 거리가 아니라 오래전 즐겨보던 드라마의 풍경같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의 시점은 뒤섞인다. 직접 걸었던 길이고 겪었던 일인데, 떠올려보면 꿈에서 본 듯 일인칭과 삼인칭이 혼재되어 있다. 나는 길을 걸으며 걷는 나를 본다. 지켜보는 시점은 당연히 허상이니 달라질 만도 한데, 이미 편집이 끝난 영상처럼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건 꿈에서만 겪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꿈과 기억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졌다. 그럴수록 기록에 집착하고, 과거를 남기다 현재를 놓치곤 한다. 한 걸음씩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반보만 걷는다. 이미 앞서간 사람들의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또 좁게 걸으며 동시에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에는 사람이 많았다. 연인과 친구들, 그리고 일하는 점원들이 있었다. 심야 버스를 운전하고, 햄버거를 만들고, 편의점을 지키고, 술잔을 나르고 테이블을 닦고. 누군가의 메리 크리스마스를 위해 평소와 다름없이 혹은 더 바쁘게 성탄절을 보내는 사람들이야말로 크리스마스의 요정이 아닐까. 요정이라는 단어가 과한 미사여구 같다가도, 하긴 성탄절은 원래 그런 날이지 싶었다.

키오스크는 묵언수행을 위한 기계 같았다. 쉴 새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손가락으로 주문하고, 번호가 뜨는 모니터를 지켜보다 픽업테이블에 나온 햄버거 봉투를 들고나왔다.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늘고, 말을 할 일은 줄어만 간다. 아무런 대화도 없이 성탄절이 지나간다. 하긴 내게 성탄절은 원래 그런 날이지.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뒤편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러 돌아보니 술에 취한 듯한 일행 서넛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한껏 웃으며 급하게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다. 골목 안쪽엔 빵이 든 종이가방을 든 커플이 앞에 있었고, 그보다 앞으로 패딩 모자까지 푹 뒤집어쓴 모습이 똑같은 엄마와 아이가 바삐 걷고 있었다. 골목을 지나 코너를 돌자 한 손엔 포장된 패스트푸드를, 다른 손엔 작은 캐리어를 쥐고 어느 집 이층을 올려다보는 남자가 있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새로운 이벤트가 생기면 NPC들 머리 위에 느낌표가 뜨는 게임이 있었다. 성탄절이어서일까, 마주치는 사람마다 각자의 사연을 들고 새로운 이벤트를 기다리는 듯했다.

모든 풍경을 지나쳐 도착한 집은 고요했다. 옷에 붙은 한기와 소란을 털어냈다. 허기를 달래려 가볍게 나갔던 외출인데 너무 많은 사람을 보고 왔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 분을 기리는 밤. 아무것도 적지 못한 문서창에 홀로 요란한 커서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방안에 혼자 있다. 그런 나를 보는 또 다른 내가 있다. 도무지 이 꿈은 깰 생각을 않는다.

2022.12.24.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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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고 초조하기만 합니다. 저는 자주 말을 잊고, 대화가 익숙해질 만하면 어김없이 사람들과 멀어집니다. 한 번도 대화란 걸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왜 대화는 자전거처럼 한 번 익혀 평생 쓸 수 없는 걸까요. 해야 하는 말은 여전히 모르겠고, 하지 말아야 하는말은 늘어만 갑니다. 주머니에만 넣으면 꼬이는 이어폰 줄처럼 저의 말은 쉽게 엉킵니다. 애쓸수록 영영 풀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립니다. 무선 이어폰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유선 이어폰을 쓰듯, 꼬인 줄을 푸느라 애쓰며 공허히 시간을 보냅니다. 꼭 들어야 할 말을 듣지 못한 채 초조한 표정으로 엉킨 줄을 풀고 있습니다. 왜 저런 걸 써서 저렇게 고생하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당신도 그런 적 있었나요. 사실 매번 묻고 싶었습니다. 당신도 엉킨 마음을 풀지 못해 주저 앉아 울었던 적이 있나요. 몸 안에서 무언가 조각나 폭발하듯 흩어지는 기분을 겪어보셨나요.
어떤 대화는 무섭기만 합니다. 대화는 무섭기만 합니다. 대화는 무섭습니다.
사람은 무섭기만 합니다. 어떻게 해야 혼자 살 수 있을까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어떤 대화도 관계도 없이, 그럼에도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을까요. 이어폰의 줄을 잘라 버려도 괜찮을까요. 어떤 말이 당신을 외롭게 하나요. 저는 모든 말이 그렇습니다. 불편한 사람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사람은 왜 불편할까요. 당신도 그렇습니까. 당신은 저는 어떤 사람은 그는 그들은.
그래서 어떤 말이, 당신을 외롭게 했나요.

2022.07.14.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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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을 맞춘 것도, 그러려던 것도 아닌데 해가 뜰 때쯤 깼어요.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고 습관처럼 포털 사이트를 켜보니 일출 시각이 검색어에 떠 있더라고요. 창을 보니 어둡다고도 밝다고도 못할 정도의 밝기였어요. 해 뜨는 시간을 확인하진 않았어요. 몇 년 전 바다에 갔을 때, 해돋이를 보기 위해 새벽부터 바닷가에 나가 기다렸지만 잔뜩 흐린 하늘 때문에 한참 뒤에야 구름 사이로 떠오른 해를 보았어요. 차마 해돋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에서야 얼굴을 내민 해를 보며, 해돋이는 시간보다 날씨가 중요하단 걸 알았어요.
오늘은 그 반대였어요. 집 앞에 나갔을 땐 이미 하늘이 파랗게 밝았고, 해도 지평선보다 높게 떠 있었어요. 그럼에도 두꺼운 구름이 지평선 위에 이불을 덮은 듯 낮고 넓게 깔려 있었고, 하늘에도 듬성듬성 퍼져 있어 해 주변엔 붉은빛이 선명히 번지고 있었어요. 이 정도면 해돋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새해를 맞았어요.
점심을 지나 저녁은 조금 못 미쳐 깜빡 잠이 들었어요. 간밤 적게 잔 것도 아닌데 밤처럼 곤히 잤어요. 새해 첫날의 절반을 그렇게 보냈어요. 계속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은 잘 나지 않아요.
늦은 밤에야 깼어요. 삶은 고구마 하나를 커피와 함께 먹었어요. 종일 자서 그런지 허기는 쉽게 채워졌어요. 글쓰기 전 음악을 고르다 예전에 한창 들었던 밴드의 노래가 생각나 검색해 보았어요. 새 앨범이 작년에, 그러니까 나흘 전에 나왔더라고요. 더 늦기 전에 알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앨범을 재생했어요. 인사를 건네는 첫 곡이 흘러나왔고, 이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당신은 새해 첫날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혹 만족스럽지 않았다 해도 겨우 하루인걸요. 올해는 분명 당신에게 좋은 일로 가득한, 행복한 한 해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 종일, 이 한마디를 하고 싶었어요.
2019.01.01.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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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2022. 12. 25. 02:14 /2015-

오늘따라 옆 건물 작은 교회의
기도 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바람만 겨우 드나들 만큼 좁게 벌어진 창틈은
숨구멍인지 망가진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흔한 붉은 십자가 하나 옥상에 달지 못해
창문에 붙인 교회, 두 글자가 전부인 곳에서
누가 왜 저리도 간절히 소리치는 걸까요
어릴 적 물에 잠겼다 나오며 새로 태어났던 저는
이젠 왜 그 흔한 구절 하나 외지 못하고
저 좁은 창틈 사이로 들리는 소리들이
낯설기만 할까요
그때의 저는 또 언제 죽었기에
지금 저는 몇 번째인가요, 혹시 아실까요

종일 자신의 잘못을 헤아려봤다는 당신에게
저는 아무 기도도 해주지 못했습니다
괜찮다는 말이라도 했다면
당신은 여기 남았을까요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당신의 떨리던 두 손을 떠올립니다
부디
용서받을 수 있는 밤이길
당신 목에 그 두껍고 질긴 참회록이
물에 젖은 낱장 휴지처럼 쉬이 찢기길
손바닥에 붉은 십자가를 그리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기도를
아무도 들을 수 없을 만큼 작게 따라 합니다
부디 용서받을 수 있는 밤이길

2022.11.09.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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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날 부를 수 있을까.
신고되지 않은 삶이었다. 나를 낳은 두 사람은 무슨 이유에선지 내 출생을 나라에 알리지 않았다. 나라는커녕 나도 내 이름을 모른다. 두 사람이 날 부르던 방법이 있을 텐데, 이거든 저거든 아니면 그거든. 어쩌면 지금껏 내가 들었을 누군가의 이름과 같은 것이든, 무언가 있어서 불렀을 텐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동물도 자신을 부르는 걸 아는데, 아무리 기억을 못하는 어릴 때라도 충분히 들었다면 뭔가 반응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난 그마저 충분히 듣지 못했나 보다. 당연히 두 사람의 이름이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한동안은 두 사람과 함께였다. 그렇게 들었다. 날 맡긴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고, 그 사람들이 그 사람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랬다.
그 얘길해 준 건 노인이었다. 난 노인과 함께 컸다. 모두가 노인이라 불렀기에 난 그게 그의 이름인 줄 알았다. 다른 아이들이 엄마나 아빠, 또는 그 중간에서 엄빠나 아마를 발음할 때 난 노인이 되지 못한 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노이라거나 노옹이나 느이 혹은 노 같은. 엄빠 아마와 달리 노이나 노옹 느이는 옹알이와 다름없었고, 노인은 그 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노인으로 입을 떼는 아기를 누가 상상이나 할까.
그럼에도 내 첫 말은 노인이었다. 하루의 대부분이 노인과 함께였고, 노인은 말을 못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다른 사람이 노인을 부르는 말이었다. 그에 반해 노인은 늘 말이 아닌 눈과 손으로 날 불렀다. 나 역시 본의 아니게 소리가 아닌 눈과 손, 몸짓으로 노인을 불렀다. 하릴없이 눈으로 봐야만 서로를 알 수 있는 관계였다.
내가 옹알이를 한 것이 아니라 노인을 불렀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무렵, 노인은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라디오를 켜놓았다. 밤이 되면 방에 불을 켜듯 아침에 일어나면 라디오부터 켰다. 그렇게 잠들기 직전까지, 때론 켜놓은 채로 잠이 들었다. 나중에야 내가 말을 더디게 배울까봐 그랬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라디오는 노인이 고용한 나의 말 선생이었다. 외국어를 못하는 사람이 무작정 외국인의 말을 계속 듣는 것처럼 라디오를 들었다. 그덕에 방안엔 수시로 음악이 흘렀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말소리보다 음악이 좋았다.
두 사람의 얼굴도, 날 부르던 방법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노인과 들었던 노래들은 기억한다. 그 당시 히트했던 가요는 물론 광고 음악나 시그널까지.
그 소리가 내 첫 기억이다.

2019.01.23.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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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뼈

2020. 1. 19. 23:55 /2015-

우린 무엇도 되지 못한 채
시간의 껍질만 만지다 말겠죠
거칠고 딱딱한 표면을 만지며
이건 깰 수 없다 포기하겠죠
왜 사람의 뼈는 속에 있나요
서로를 안았을 때 온기를 느껴야 하니까
라고 말한 그 사람은 한 번도 날 안아주지 않았어요
아무도 안아준 적 없어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어요
따뜻하지 못할 거라면 뼈는 왜 속에 있나요
언제 다쳤는지 모를 상처를 보고 당황하는 건
왜 익숙해지지 않을까요
시간보다 단단해지고 싶었어요
알아요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할 거예요

nine 구해줘
2017.12.29.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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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그의 고백을 받아줄 수 없었다. 삼년 반, 짧지 않은 시간을 알고 지낸 사람이었다. 회사 동료로 만난 두 사람은 취향이 비슷했고,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잘 어울린다는 말도 들었다. 일 년, 이 년 시간이 흐르며 슬슬 사귈 때도 되지 않았냐고 회사 사람들이 말할 때마다, 여자는 물론 남자도 그런 관계는 아니라며 손사래쳤다. 우연치 않게 회사 근처에서 둘이 있는 모습을 본 친구는, 그녀에게 드디어 연애를 시작한 거냐고, 길었던 솔로 인생을 끝내는 거냐고 물었다. 여자는 아니라며, 그런 일 없다고 했지만 친구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정확히는 아닌 걸 알면서도 제발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듯 했다.
여자의 친구가 두 사람을 보았던 그날, 남자는 여자에게 고백했다. 퇴근 후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간단히 차 한 잔을 마신 뒤 헤어지던 길이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말하는 거라며, 괜찮다면 정식으로 만나고 싶다고, 남자는 평소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는 답했다.
죄송합니다.
단호한 여자의 태도에 어찌할 줄 모르는 남자를 두고 여자는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먼저 들어가 볼게요, 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그의 성격상 본인이 말했을 것 같진 않았다. 사실 어디서 말이 시작된 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소문은 퍼진 뒤였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사람일수록 허무하게 깨진 관계를 믿을 수 없어했다. 잘 사귀던 연인이 원치 않던 계기로 헤어지기라도 한 듯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몇몇은 뭐 그리 잘났냐며 여자를 험담했다. 동기는 이번엔 뭐가 문제냐며, 이젠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여자에게 물었다.
집에 돌아와 잘 준비를 마친 여자는 침대에 누워 오래도록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일어나 한 쪽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여자는 오늘 들은 말을 곱씹어 생각했다. 정말 무언가 잘못된 건 아닐까.
여자는 다른 일에도 눈치가 빠른 편이었지만 특히 자신을 향한 타인의 감정에 더 민감했다.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다 싶으면 애써 그 사람을 멀리했다. 이번엔 조금 늦었다. 오래 알아온 사람이라 한 번 두 번 사적인 만남이 이어졌고, 신기할 만큼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잘 숨겨왔다. 그동안 주고 받은 대화와 행동을 하나씩 곱씹으며 여자는 자신이 어디서 무얼 놓친 걸까 고민했다.
헤어짐이 무서운 걸까, 누군가의 진심을 받아들이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진심을 내보이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여자는 스스로도 자신이 왜 사람을 멀리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유를 모른다 해서 누군가의 마음을 쉬이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이십 구년이 흘렀다. 지난 이십 구년간 여자 역시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이대로 누구도 만나지 못하면 어쩌지. 이상하게도 그런 걱정 끝엔 그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새벽이 지나고 창문이 서서히 푸른빛으로 물들 때쯤 여자는 조용히 되뇌었다.
괜찮아.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이대로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가만히 앉아 자신의 손을 쓰다듬으며 다시 한 번 되뇌었다. 그냥, 지금처럼만. 고개를 묻은 무릎 아래로 떨어지는 새벽 햇볕이 여자를 대신 침대에 길게 누웠다.

nine 구해줘
2012.07.02.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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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2019. 10. 29. 23:49 /2015-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누군가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던 그때. 공주도 왕자도 아닌, 마법이나 신비한 일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 살았어요.
아침에 겨우 일어나 씻고 집을 나와 일을 시작해, 점심을 먹으며 잠깐 쉬었다가 다시 일을 하고, 저녁이 조금 지나서야 집에 돌아와 늦은 식사를 한 뒤 쉬다가 잠이 드는, 동화엔 한 줄도 등장하지 않을 만큼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었어요.
소소한 일에 웃고 즐거운 일도 간혹 있었지만 일하다 지치는 날이 더 많았고 감기보다 자주 우울함이 찾아왔으며 좀처럼 답이 보이지 않는 고민에 빠져 잠드는 날이 빈번했어요. 오래오래 행복했다는 누군가가 너무 많은 행복을 가져간 걸까요. 아니면 그만큼 큰 불행을 한 번 겪지 않아서일까요. 많은 이들이 그렇듯 이 사람 역시 잔잔하고 길게 흐르는 불행 가운데 마디처럼 새겨진 행복을 매만지며 살았어요.
문득 기침이 늘었다고 생각해 의원을 찾은 어느 날, 사람은 자신이 위험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지금은 아무 약국에서나 약을 구할 수 있는 병이지만 그땐 아니었어요. 가장 용하다는 의사도 고칠 수 없는 병이었고, 고칠 수 있다 한들 공주도 왕자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거나 하늘이 감동할 만큼 착하지도 않았고, 요정이나 산신령 또한 주변에 없는 이 사람에겐 그런 의사를 만날 가능성보단 병이 자연스레 낫길 바라는 게 더 현실적이었어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지인들은 슬퍼하며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겠다고 했어요. 그땐 그저 웃으며 고맙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얼마의 시간이 흘러 병이 악화되면서 이 사람은 더 이상 일은커녕 침대에 마냥 누워 있어야 할 만큼 몸이 약해졌어요. 지인들은 돌아가며 찾아와 간호했어요. 한동안은요. 지극정성은 힘든 일이었어요. 각자 자신의 삶이 있으니 생업을 하며 간병까지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조금씩 지인들의 발길은 뜸해졌고, 병에 걸린 사람은 점점 오래 혼자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며칠을 혼자 보냈을까요. 한 지인이 오랜만에 찾아와 전에 그랬듯 문 옆 화분 아래 놓인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인사를 건냈어요. 하지만 침대에 누운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고, 지인은 잠이라도 든 건가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갔어요. 잠시 후 집 앞을 지나던 사람이 놀랄 만큼 큰 소리가 들렸고 이내 울음 소리가 이어졌어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생을 살았던 사람은 그렇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세상을 떠났어요. 그러니까 아주 오래오래 전 이야기예요.

2018.03.0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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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봉투에 쓴 세 글자가 엔딩크레딧에 새겨진다. 극장에서 단 한 번만 상영하는 영화를 보고 나오듯 장례식장을 빠져나온다. 스크린은 낯을 씻고 흰 얼굴을 보이고, 열린 문으로 쏟아진 생활의 빛에 놀란 많은 것들이 빈 좌석 아래로 숨는다.
줄 지어선 상연관 뒤 통로를 지나 거대한 관에 빽빽하게 실려 지상으로 내려온다. 열 개의 도장이 한 잔의 커피로 변하듯 사람은 타인을 통해 죽음의 흔적을 모으다 결국 그 앞에 마주 서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애써 고개를 저으면 머릿속엔 몇 개의 장면과 정확하지 않은 대사 몇 마디만 남는다.
시간은 감독이 되어 기억을 편집한다. 이미지는 변형되고 본 적 없는 장면을 찍기도 한다. 객석에 있던 내가 영화를 잡아먹는다. 필름은 확인할 길이 없고 같이 객석에 앉았던 사람들은 각자의 영화를 꺼내놓으며 목소리를 높인다. 장면과 장면이 충돌하며 영화는 해석에서 멀어진다. 존재한 적 없는 작품이 된다. 사람들은 이따금 지금껏 본 영화를 이야기하며 삶을 견딘다. 다시 극장에 갈 때까지, 서로의 엔딩크레딧을 채워주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적은 흰 봉투를 유서처럼 간직한 채, 살아간다.

2016.09.02.2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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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될까

2019. 8. 19. 23:30 /2015-

머리카락과 손톱, 굳은살처럼 내게서 비롯된 무언가를 도려낸다. 먼지라기엔 크지만 그래봐야 한 줌이 안 되는 허물을 쌓는다. 속에서 자란 것들은 말과 글로 베어낸다. 쥐가 손톱을 먹고 사람이 되었듯 무언가는 말과 글을 먹고 사람이 될까. 사람이 아니게 될까. 몸과 함께 자란 기억이 떨어져나가며 과거를 잊어간다. 서로를 잊는다. 자신의 역사가 부끄러워 쓰레기 더미에서 타인의 시간을 체굴하던 사람이 있었다. 산 적 않은 과거와 만난 적 없는 이들의 기억을 끌어모아 그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그 사람이 베어낸 말과 글이 궁금하다.
몇 분 사이 며칠을 잘라내고 가벼워진 난, 침대에 누움과 동시에 내일로 곤두박질친다. 혹 잘라냈을까 겁이 나 잠들기 전 당신의 이름을 몇 번 되뇐다. 당신의 이름을 먹은 나는 내일, 사람이 될까.

2018.01.02.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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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어제보다 하얗고 잠잠합니다. 낮 동안 바삐 달린 바람이 자리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며 밤의 공백은 안개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빛의 흔적이 도드라졌지만 하얀 어둠은 몇 발짝 앞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지난밤엔 당신이 떠났습니다. 아니 아주 오래전 일이지요. 그러니 당신은 한 번 더 떠났습니다. 첫 만남은 반복되지 않는데 마지막 순간만 몇 번이고 꿈이 되어 나타납니다. 엔딩만을 반복하는 영화처럼, 나는 당신과 한 번 만나 수없이 헤어졌습니다. 꿈이니 한 번쯤은 다를 만도 한데, 다른 말을 하거나 다른 표정이거나 다른 이별이거나 이별이 아닐 수도 있을 텐데, 지독히도 같은 순간을 반복합니다. 한 번의 NG 없이 정해진 대사를 주고받고, 익숙한 표정을 짓고, 정확한 동선으로 멀어집니다. 당신이 사라지고 눈을 한 번 깜빡이면 방의 천장입니다. 꿈이라 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다시 눈을 감으면 시선은 당신의 뒤를 따라갑니다. 수없이 보았던 그 뒷모습의 다음, 본 적 없는 당신의 시간을 그립니다. 다시 하얀 밤입니다.

2017.01.18.2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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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하루였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 이 하루는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삼백육십사일도 아직 낯선데 고작 하루가 어떻게 익숙해질까요.
작년 오늘은 돌아오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며칠이고 자고 또 잤습니다. 당신과 만나는 꿈을 꾼 뒤엔 지칠 때까지 울다 다시 같은 꿈을 꾸길 바라며 잠들었습니다. 그보다 많은 날을 꿈에서조차 볼 수 없음에 울다 잠들곤 했습니다.
어떤 꿈을 꿔도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하루를 꼬박 걸어야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제 키보다 몇 백 배는 높은 성을 하루에 벽돌 하나씩 빼며 무너뜨리려는 사람처럼, 그렇게 매일을 보냈습니다.
기다림만큼 존재감이 선명한 게 또 무엇이 있을까요.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잡아 먹히고 맙니다. 벗어날 수 없는 기다림의 뱃속에서 다시 일 년을 살아갑니다.
가끔은 기다리며 기다림이 아닌 삶을 살기도 합니다. 꽃이 어떻게 피는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어떤 빛인지, 비오는 날 달팽이는 어딜 그리 바삐 가는지, 당신에게 할 이야기를 모으며 보냈습니다. 정작 당신을 만났을 땐 한 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하루는 당신도 저도, 말을 잃어버린 시간이었습니다.
글을 쓰려합니다. 오늘은 어제와 어떻게 다르게 아름다운지, 매일의 아름다움과 그 사이에서 당신을 그린 저를 글로 남기겠습니다. 시간은 글이 되고, 일 년 뒤 도착한 편지는 당신 곁에 제가 될 겁니다. 일년의 사이를 두고 함께 할 수 있도록, 매일의 저를 쌓아가려 합니다. 익숙해지지 않는 시간에서, 떨어져 있어도 함께 하는 방법을 익혀가려 합니다.
그리하여 오늘부터 저는, 내년의 당신과 오늘의 제가 함께 할 수 있도록, 기다림을 남깁니다.

2016.07.0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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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기원

2019. 7. 19. 23:56 /2015-

우린 서로의 입을 통해 처음 발화된 문장이었다

경전 원본을 찾은 종교인처럼
서로를 읽는 일만이 유의미했다

마침표는 우리 안에 없었고
행간은 둘 만의 언어였다

오타를 지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린 비문이 되어 웃었다

마침내
서로가 없이는 해석할 수 없는 언어가 되었다

2018.05.03.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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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당신을 삼켰던 슬픔이 오늘 저를 찾아왔어요. 할머니로 변장하고 빨간 망토를 맞은 늑대처럼, 당신 향기를 두르고 다가온 슬픔에게 전 무방비하게 문을 열어주었어요. 알았더라도 문을 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너무 오랜만에 접한 당신 흔적이 반가워 슬픔을 깊이 안았어요. 싸구려 디퓨저처럼 향기는 빠르게 흩어졌지만 그 몇 번의 숨에 깊이 가라앉았던 당신의 흔적들이 모조리 수면 위로 올라왔어요. 밀어닥친 기억과 현실의 온도 차가 너무 커 뿌옇게 김이 서렸어요. 가슴을 메운 한기가 너무 시려 서둘러 잠을 청하고, 깨면 다시 잠들기 위해 뒤척였어요. 꿈에서도 당신을 볼 순 없었지만 현실만큼 불가능하진 않았으니까요. 여전히 저는 그 희박한 확률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어요.
해질 무렵에야 눈을 뜨자 무안한 표정의 슬픔이 옆에 앉아있었어요. 그렇게까진 아니었는데. 괜찮아 습관이라 그래, 네 탓이 아냐.
문득 제 흔적을 묻힌 슬픔은 누구에게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듭니다. 딱히 반겨줄 사람은 없을 거야, 그래서 누굴 속이지도 못할 거고. 그러니 바람에 몸을 씻고 가, 괜찮으면 조금만 같이 걷다 가. 슬픔의 손을 붙잡고 집을 나섭니다.
저물어 가는 해를 등지고 나란히 걷는 슬픔에게 슬쩍,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답이 없는 슬픔을 보며 고개 숙여 혼잣말 합니다. 잘 지냈으면 좋겠어.

2019.03.29.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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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는 아직도 붓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어요.
이젠 처음 스케치가 뭐였는지, 어떤 색을 칠하려 했는지 모르겠어요.
의자 끝이 닳는지 저는 점점 낮아지고 그림은 높아만져요. 두터워진 물감이 제게 다가와요.
시간을 먹고 자란 물감의 무게가 버거워 이젤이 비명을 질러요.
의자와 이젤 중 어느 것이 먼저 무너질까요. 죽은 나무를 괴롭히며 걱정합니다.
하얀 얼굴들이 늙어가는 저를 바라봐요. 아무 것도 없는 하얀 눈 두덩이가 무서워 고개를 돌려 놓았어요.
어제 꿈에선 줄지어 선 뒤통수들이 제 그림을 나무랐어요. 분명 뒷모습인데 모든 각도의 얼굴이 보였어요.
왜 조심하라고 말해주지 않으셨어요. 거울보다 더 선명한 이 하얀 얼굴들을 어떡해야 해요.
선생님 저는 언제쯤 포기할 수 있을까요.

2019.03.19.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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