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남짓 비가 왔다.

2018. 10. 19. 23:24 /2015-

3주 남짓 비가 왔다. 쏟아지다 약해지길 반복했지만 단 한 번도 멈추진 않았다. 방울진 빗소리가 방안에 가득했다. 어딜 가도 몸에 물방울이 맺힌 느낌이었다.
네가 머문 지 3주가 지났다. 너와 나는 같은 역 근처에 살았다. 내가 사는 집은 역 바로 앞이었고, 너의 집은 십 여분 거리에 있었다. 비가 오기 시작한 날, 너와 난 짧은 만남 뒤 함께 돌아오던 길이었다. 두 사람 다 우산이 없었고, 난 하나뿐인 우산마저 며칠 전 잃어버린 터였다. 비 좀 멈추면 가. 충동적으로 나온 얘기에 넌 무슨 생각인지 그러겠다 했다. 내가 그랬듯 너 역시 이렇게 비가 오래 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기록적인 장마였다. 누군가는 곧 멈출 것이라 했지만 정작 비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수구가 마시던 물을 뱉어내며 도로는 하천이 되었다. 차오르기 시작한 물은 한 시가 다르게 불었고, 불어난 물은 오래 굶은 짐승처럼 손길이 닿는 대로 집어삼켰다. 인도와 차도가 모두 수로가 되었고 건물 한 두층이 잠기는 데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TV에선 많은 말이 오갔지만 결론은 늘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우였고, 대책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에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이대로 비가 멈추지 않으면 어쩌지? 성서엔 40일 동안 비가 온 일이 적혀있어. 밤새 쏟아붓는 비에 온 세상이 잠겼대. 비 온 지 며칠이 됐지? 20일 정도? 벌써 그렇게 됐나. 그러게 벌써. 앞으로 20일 더 오면, 세상이 잠길까? 글쎄, 그래도 언젠가부터 더 높아지지 않는 것 같은데? 그러게, 한 번에 많이 내리는 건 아니라서 그런가. 흘러가는 양하고 비슷한가 봐. 그나마 다행인 건가. 그래도 20일이면 지금까지 온 만큼이 더 오는 건데? 그런가. 응. 뭐 한 두층은 잠길 수도 있겠다. 그럼 그 상태에서 20일이 더 오면? 조금 더 많은 곳이 잠기겠지. 어쩌면 어떤 건물들은 물에 완전히 잠길 수도 있겠다. 그래도 세상이 잠기진 않겠지? 음, 아마 그렇지 않을까? 높은 건물도 많고, 그보다 높은 산도 많으니까. 20일이 더 오면? 글쎄, 그러면 다 잠길지도 모르겠다. 그쯤 되면 더 이상 흘러갈 곳도 없어서 오는 대로 다 차오를 테니까. 그렇구나. 비가 멈추면 돌아갈 거야? 그래야겠지? 벌써 3주나 집을 비워둔 걸. 돌아가면 보일러 켜서 습기도 좀 빼고, 환기도 시키고 해야지. 응, 그래야지. 만약에 비가 안 멈추면? 이대로 20일 더 비가 오면? 그러고 또 20일, 다시 20일 비가 계속되면, 여기 있을 거야? 아니, 잠기기 전에 더 높은 곳으로 가야지, 여긴 그렇게 높지 않으니까. 그러네. 여긴 그렇게 높지 않지. 응, 비가 계속 오면 더 높은 곳으로 가자.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으로. 그래, 같이 가자. 응, 같이.
약속이라도 하듯 너와 난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더듬었다. 맞닿은 손 끝에 작은 빗방울이 맺혔다.

2014.07.03.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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