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려오던 차의 흐름이 끊겼다. 신호가 바뀌었나 보다. 아무리 바쁜 시간에도 정체되진 않지만 종일 쉬지 않고 차가 오가는 4차선 도로의 커브 길. 이곳이 내가 머무는 곳, 내가 죽은 자리다.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맞은편에서 덮쳐온-버스나 대형 트럭이었을-커다란 차와 조수석에 앉은 나, 거기까지다. 누구와 함께였는지, 어느 쪽이 차선을 넘은 건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이곳에 다른 누군가가 없는 걸 봐선 즉사한 건 나 한 명뿐. 뒷자리는 몰라도 운전자는 있었을 텐데, 병원에서 죽은 건지 아니면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죽었지만 서로를 못 보고 있는 걸 수도 있다. 나만 못 보고 있거나.
처음엔 달려오는 차를 보고 놀라 피하기도 했다. 눈을 떠 이곳이 어디고 내가 누군지를 채 생각하기도 전에 차들이 달려왔고, 피하기도 전에 가장 먼저 달려온 차가 내 몸을 통과해 갔다. 그렇게 두 대, 세 대. 머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내리고, 눈을 떴을 땐 이미 한 무리의 차가 지나간 뒤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난 어떻게 멀쩡한 거지. 긁힌 자국 하나 없었다. 경적을 울린 차도 없었다. 일단 도로를 벗어나야겠다 싶어 걸음을 떼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족쇄가 묶여 땅에 박혀 있는 것처럼, 아무리 사방으로 움직여도 한 차선의 절반 정도 되는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내가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을 때, 다시 차들이 달려왔다.
네 번의 차 무리를 보내고서야 혹시-하고 생각했고, 한 대의 대형트럭이 날 덮쳐오며 사고 장면이 떠올랐을 땐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여기서 죽었다는 걸.
간헐적으로 달려와 내 몸을 훑고 가는 자동차 무리. 바람은커녕 차가 지나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아직 눈은 온 적 없지만 비 역시 맞는 느낌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살아있는 감각이라고는 시각과 청각뿐. 그나마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좁아 볼 수 있는 건 그저 이 주변과 지나는 차뿐이다. 주변이라고 해봐야 가로등과 나무, 얕지만 그 너머가 보이지 않는 정도의 언덕만 있을 뿐. 사람은 물론 들짐승조차 보이지 않는다. 결국 지루하고 지루한 하루의 반복에서 달라지는 거라곤 지나가는 차들뿐. 며칠 째 종일 서서 달려오고, 스치고, 멀어지는 차를 봤다. 힘들거나 졸리다는 느낌도 없어 그렇게 내내. 이럴 거면 차라리 잠이라도 마음껏 잘 수 있으면 했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 긴 잠을 잔다면 그건 그냥 죽음 그 자체가 아닐까. 물론 지금 몸소 체험하고 있듯, 죽음은 잠과는 동떨어진 전혀 다른 모양새지만.
그저 인상만 남을 만큼 빠르게 지나는 차들을 보며 생각한다. 저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 코너를 지나 다음 신호등이 있는 곳엔, 아마 내가 가려다 끝내 도착하지 못한 그곳엔 무엇이 있을까. 그 반대편, 내가 온 곳엔 또 뭐가 있을까. 내가 탄 차가 차선을 넘은 거라면 방향은 반대가 되겠지만. 나와 함께 가던 사람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여전히 날 생각하며 슬퍼할까. 날 기억은 할까, 나도 그 사람 기억 못하는데. 그렇다면 얼마나 오래, 기억해 줄까. 끝내 알 수 없는 물음이 헛되이 이어진다. 그래선 난,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걸까. 다시 한 무리의 차가 달려온다. 신호가 바뀌었나 보다.

2018.02.13.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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