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다시 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애초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네가 좋아했기에,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싶다고-이왕이면 소설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다고 말해서니까. 교과서에 실린 작품 외엔 소설책 한 권, 시 한 편 읽은 적 없던 내가 문학동아리에 든 것도 너 때문이었다. 사랑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너와 알고 지내면서도 다른 사람을 만났고, 네게 만나는 사람이 생겼을 때도 질투 같은 건 느끼지 않았다. 그보단 동경에 가깝지 않았을까. 이 사람을 더 알고 싶다, 오래 곁에 있고 싶다는 감정. 모르겠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감정이 더 사랑에 가깝거나 누군가는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는지도.
3학년 1학기의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새벽까지 도서관 지하 열람실에 있다가 이제 좀 쉬어야겠다 싶어 책상에 엎드렸다. 그것도 잠시, 자세를 몇 번 바꾸다 이왕 자는 거 동방에 가서 눕는 게 낫겠다 싶어 일어났다. 여름이지만 온기를 모두 잃은 새벽은 춥기만 했다. 양팔을 감싸고 급히 동방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대부분의 시험이 끝나 이미 종강한 과목이 많았기에 학교는 조용했고, 복도는 조심스러운 발걸음도 크게 울렸다. 당연히 잠겼을 거라 생각해 번호키를 누르고 문을 열었는데 동방 안 쪽에 불이 켜져 있었다. 누가 있나 싶어 들어가 보니 나보다 놀란 표정의 네가 있었다.
종강 뒤풀이를 하다 차를 놓쳤다고, 택시는 차마 못 타겠어서 첫 차가 다닐 때까지 기다리려고 왔다고 했다. 자다 깬 기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 자던 걸 깨운 건 아니냐고 묻자 아니라고, 시험 기간에 문득 읽고 싶은 책이 생각나서 종강만 기다렸던 터라 지금 막 읽기 시작했다고, 그런데 막상 여유가 생기니 그렇게 당기진 않아서 읽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넌 책상 위에 놓인 책갈피 대신 야식집 전단지가 꽂힌 책을 가리켰다. 그냥 멍 때리고 있었네. 그렇지 뭐.
언제 잠이 들었더라. 누군 아직 시험에 리포트까지 남았는데 팔자 좋다는 괜한 핀잔을 시작으로 꽤 오래 잡담을 나눴다. 이미 며칠을 제대로 못 잤기에 눈은 자꾸 감겼고, 이젠 정말 자야겠다 싶어 급히 누웠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8시가 조금 넘어 네가 깨워서야 난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알람 맞추는 걸 보긴 했는데 왠지 내가 깨지 못할 것 같아 기다렸다고, 8시 전후로 알람이 세 번이나 울렸는데 난 매번 끄고 다시 잠들었다고 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은 날 보고서야 넌 동방을 나섰다. 남은 시험 잘 보라는 말과 아마 네가 덮어주었을 담요만 남기고.
흔한 학교 담요였지만 그날 잠에서 깨며 느꼈던 그 따뜻함은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남았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릎 언저리가 따스해질 만큼. 어쩌면 아직 내가 글을 쓰는 건, 그날의 온기를 잃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네 글을 읽고 싶다.

2018.02.18.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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