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날이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지나는 차 때문에 머리카락이 쉴 새 없이 흩날렸다. 사납게 다가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불빛에 다리 끝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불빛에 일렁이는 강물은 꿈틀대는 거대한 뱀 같았다. 다리에서 표면까지보다 몇 배는 더 깊을 강의 속살이 까마득했다.
가볍게 결정한 건 아니었다. 몇 번을 빨아도 남는 주머니 속 먼지처럼 씻어낼 수 없는 생각이었다. 이따금 손가락 끝으로 동그랗게 매만지다가 꺼내 던져버리던. 그날도 습관처럼 손끝을 굴리다 주머니에서 손을 뺐는데, 손에 잡힌 게 아무것도 없었다. 먼지가 있다고 생각한 곳엔 뿌옇고 지저분하게 변해 풀어진 손가락 끝이 있었다.
편지는 쓰지 않았다. 누가 읽기는 할지, 기약 없는 글을 쓰는 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구차해지는 것도 지겨웠다. 그저 잠깐, 마지막으로 조금 더 아름다운 걸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특별히 생각나는 것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인도의 보폭은 좁고 난간은 낮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누군가는 차도든 난간이든 한 쪽으로 너무 가까이 붙을 수밖에 없지 않나 싶을 만큼 좁은 길. 어느 쪽이 더 위험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려울 것도 없이 그저 난간 밖으로 몸만 기울이면 될 것 같았다. 먼지를 던지듯 툭. 두 손으로 난간을 짚고 낮은 턱에 발을 딛고 올랐다.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인 채 저 멀리 건너편 다리를 보다가 눈을 감으려는데, 난간을 잡은 손 위로 무언가 떨어졌다. 손 등 위엔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물방울이 점점이. 이윽고 비가 쏟아졌다. 달리는 차보다 더 매섭게, 강바닥을 향해 비가 곤두박질쳤다. 비의 끝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는 선명하게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사납고 까맣고 차갑지 않나. 턱에서 내려와 난간을 잡은 손을 거뒀다. 순식간에 젖은 머리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아름다움은 멀고 사납고 까맣고 차가운 것은 사방에 있었다. 주머니에 넣지 않아도 손 끝엔 늘 먼지가 만져졌다. 머릿속에서 그 날의 난간을 수없이 오르며 어떤 때는 강하게 뛰어내리고, 또 어떤 때는 빗물에 미끄러져 떨어지며 지금의 내가 없을 상황을 그렸다. 무사히 다리를 벗어나는 장면은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다.
먹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 냉장고 구석에서 곰팡이가 번져가는 채소 쪼가리가 된 기분이다. 오늘도 난 차도와 난간 사이, 좁은 인도에 서 있다.

2018.02.22.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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