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깨우기 전에 눈을 떠요. 그래도 조금 더 누워있고 싶어서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어요. 알람이 울리면 엄마가 방에 들어와 저를 깨워요. 씻고 나와 엄마가 꺼내놓은 옷을 입고 아침을 먹어요. 어제 챙겨놓은 가방을 메고 인사해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이사 오기 전엔 엄마가 늘 데려다줬지만 전학 온 뒤론 혼자 다녀요.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서 아파트 단지만 나서면 바로 길 건너가 학교예요. 아침마다 아주머니들이 나와 계셔서 위험하지 않아요. 사실 학교에 있을 때가 제일 펀해요. 수업은 다 아는 내용이라 재미없지만 그만큼 열심히 안 해도 돼요. 그냥 적당히, 숙제만 잊지 않고 시험 때만 신경 쓰면 괜찮아요. 그래도 성실히 듣는 척은 해요. 선생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니까요. 그보다 쉬는 시간이 자주 있어서 좋아요. 점심도 친구들이랑 먹을 수 있고요. 전에 다니던 학교에선 학원 다니는 애들이 별로 없어서 혼자 학원가는 게 너무 싫었어요. 엄마는 그런 거 부러워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다들 놀러 간다고 같이 가자는데 나만 못 가니까. 처음엔 부럽기도 했지만 나중엔 미안했어요. 여긴 학원 다니는 애들이 많아서 좋아요. 어느 학원이든 같은 반 친구들이 몇 명씩은 꼭 있고, 학교 끝나고 놀자는 애들도 없으니까 부럽거나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수업이 끝나면 학교 앞에 학원 차들이 와 있어요. 처음엔 차가 너무 많아서 찾기 어려웠는데 이젠 눈 감고도 찾아 탈 수 있어요. 매일 차들이 서는 위치가 같거든요. 기사 아저씨들끼리 정해놓은 규칙이 있나 봐요. 오늘은 수학학원 갔다가 심화반만 들렸다 집에 가요. 시간이 어중간해서 저녁은 집에 가서야 먹어요. 수학학원이 끝날쯤엔 배가 고프지만 심화반 선생님이 늘 빵을 챙겨주셔서 괜찮아요.
학원에서 쪽지 시험을 봤는데 세 문제나 틀렸어요. 여기 애들은 다 공부를 잘해서 시험 문제도 어려워요. 그래도 심화반 들으면서 백점도 몇 번 맞았는데, 오늘은 아는 문제도 두 개나 실수했어요. 이러면 숙제가 또 많아지는데 걱정이에요.
학원 차에서 내리면 엄마가 단지 앞까지 나와 있어요. 집에 돌아와 손을 씻고, 늦은 저녁을 먹고 책상에 앉아 예습을 하고 있으면 영어 선생님이 오세요. 캐나다에서 온 대학생이래요. 처음 만난 외국 사람이에요. 엄마랑 있을 땐 한국말도 엄청 잘 하시던데 저랑 있을 땐 안 그래요. 방금 막 한국에 온 사람처럼 영어만 써요. 그게 규칙이래요.
선생님이 가시면 옷을 갈아입고 숙제를 시작해요. 수학 숙제가 생각보다 많지만 그래도 1시 전에 다 끝내서 다행이에요. 내일 가는 논술이랑 피아노 학원 책을 넣고 가방을 마저 챙기면 엄마에게 검사를 맡아요. 자리에 누우면 엄마가 이불을 덮어주고 옆에 앉아요. 몰라서 틀리는 것보다 실수해서 틀리는 게 더 안 좋은 거라고, 이미 여러 번 들은 얘길 또 들을 줄 알았는데 엄마는 대신 내일모레는 실수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도 이사 온 뒤로 학교 시험은 늘 잘 봐서 다행이라고 잘하고 있다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요.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잘 자라며 불을 끄고 엄마는 방을 나가요. 깜깜한 방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내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에요. 엄마는 잘하고 있다는데, 오늘도 나는 없어요.

2018.03.17.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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