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아. 나뒹구는 맥주 캔만 늘고 있어. 아무리 취해도 잠이 오지 않아. 어떻게 하라고. 새벽이잖아. 마음껏 소리칠 수도 없어. 전화기에서 지운 네 번호가 왜 술만 마시면 또렷하게 떠오르는지 모르겠어. 그날 네가 울었던가. 난 울지 않았던 거 같은데.
그날도 난 글을 썼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어. 어처구니없지. 실감이 안 났던 걸까. 오히려 그날 평소보다 글이 잘 써졌다면 넌 믿을까. 아주 익숙한 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처럼 난 키보드를 두드렸어. 그날도 그 다음 날도 그 다다음 날도. 내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어.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평소보다 늦게 잠든 어느 날, 난 죽은 듯 긴 잠을 잤어.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꼬박. 뒤척이는 일 한 번 없는 깊은 잠이었어. 서너 장의 페이지를 한꺼번에 넘긴 듯 시간이 뭉텅이로 넘어갔어. 잠에서 깼을 땐 저녁이었어. 습관처럼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떠지지 않는 눈을 비볐어. 문서 폴더로 들어가 잠들기 전까지 썼던 글을 클릭해 열었어. 마우스 휠을 돌리며 글을 읽던 난, 내가 아직 잠에서 덜 깬 줄 알았어. 쓰던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글이 적혀있는 거야.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그날 썼던 부분부터 다시 읽다가야 깨달았어. 그건 너에 대한 글이었어. 난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어. 거기엔 내가 알고 있던 너, 내가 기억하는 네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어.
정신을 차렸을 때, 노트북은 모니터가 깨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난 책상에 엎드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울고 있었어. 겁에 질린 짐승처럼 서럽게 울었어. 그날 난 먼저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왜 네 뒷모습이 기억나지 않는 걸까. 그날 내가 울었던가. 넌 울지 않았던 거 같은데.

2011.04.17.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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