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도록 잠들지 못했다. 너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돌아온다 했다. 오늘 밤 반드시 돌아올 거라 그랬다. 계절의 초입임에도 겨울의 밤은 지겨우리만큼 길었다. 전화기를 두 손에 쥔 채 눕지도 못하고 밤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올 리 없었다. 네가 돌아오는 날인데 어떻게 잠들 수 있겠어.
춥잖아. 다음부턴 나오지 마.
그때 그 이야기만 아니었다면 오늘 밤도 집 앞에 서있었을 것이다. 손발이 얼어붙고 감각이 무뎌져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그날 밤처럼, 추위도 잊은 채 너를 기다렸을 것이다. 감정은 감각을 마비시킨다. 너를 기다릴 때면 오직 설렘과 불안만 느낄 수 있는 사람처럼 다른 감각에 둔해졌다. 추위나 허기는 물론 피곤함도 느끼지 못했다. 너를 기다리는 밤은 늘 그랬다. 몇 해가 지났지만 이 밤만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불안해하지 마. 조금 늦더라도 꼭 돌아올 테니까. 너도 알잖아. 내가 머물 곳은 여기뿐이라는 걸.
처음엔 막연한 불안이었다. 오랜만에 느낌 감정이라 지나치게 유난을 떠는 거라 생각했다. 허나 오래지 않아 근거 없는 불안이 아님을 깨달았고,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너의 조금은 내겐 너무 긴 시간이었다. 한 번, 두 번, 반복된 너의 빈자리에 나는 미치도록 초조했다. 무언가에 중독돼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너의 공백은 나를 무너뜨렸다. 도대체 무얼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던 그날 밤, 네가 두 번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난 너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아니 정신을 잃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며칠이 지나고 정신을 차렸을 때, 넌 다시 짐을 꾸리고 있었다. 가는 거야? 신기할 정도로 무덤덤했다. 네가 없는 동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던 지난날이 무색할 만큼, 다시 떠나려는 널 보며 난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응.
짧은 대답이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네가 떠나는 모습을 제대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익숙해진 걸까. 익숙해질 수 있는 감정이었을까. 단출한 식사. 짧지만은 않은 포옹. 멀리 나가지 않았던 인사. 넌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난 오래 서있지 않았다. 네가 떠난 그날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대로 잠이 들었던가. 아니면 또 울면서 날을 지새웠던가. 확실한 건 그 이튿날부터 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지난 몇 해간의 기억이, 너와의 추억이 모두 긴 꿈이었던 것처럼, 너와 완전히 이별한 듯 그렇게 살았다. 날이 밝는다. 아직 달은 지지 않았다. 겨울의 밤은 해가 떠도 끝나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다. 올 리 없다. 올 리, 없다.

2011.11.15.29:39.
이상은 초승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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