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엄마와 나를 때린 다음 날엔 어김없이 치킨을 사 오셨다. 그것만 있으면 모든 죄를 사함받을 수 있다는 듯이. 그러니까 치킨은 아버지의 면죄부이며 엄마와 나의 맷값이었다. 난 시퍼렇게 든 멍이 가려워 몇 번이고 긁으면서도 치킨을 먹으며 맛있다 생각하는 내가 싫었다. 게임 속에서 나는 세상을 구한 용사였는데, 현실에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엄마의 성경책 읽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 손에 성경책은 군데군데가 찢겨나갔고, 하릴없이 엄마는 몇 번이고 장을 건너뛰며 읽어야 했다. 얇아지는 성경책만큼 엄마와 나는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엄마가 집을 나갔다. 그 전날 엄마는 웬일로 나를 불러서는 성경이 아닌 옛날 얘길 해줬다. 엄마가 내 나이 때 어떤 걸 보고 듣고 자랐는지, 뭘 하고 놀았는지, 어떤 만화를 좋아했는지, 평소엔 잘 하지 않던 이야기들을 한가득 들려주었다. 엄마는 나보다 조금 더 큰 소녀들이 변신해서 악당들을 물리치는 만화를 좋아했다고 했다. 남자와 여자만 다를 뿐 내가 하는 게임과 비슷한 얘기 같았다. 엄마도 어릴 땐 나하고 비슷한 걸 좋아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러다 엄마는 말했다. 어릴 때 본 마법 소녀는 주문만 외우면 변신을 하곤 했어. 한껏 아름다워진 모습으로 사랑과 정의를 말했지. 하지만 현실은 주문을 수만 번 외워도 나아지는 게 없었어. 오히려 점점 더 시궁창으로 떨어지기만 했지. 내가 멍청했어. 사랑과 정의는 다 마법으로만 가능했던 건데, 난 마법 소녀가 아니잖아. 그 뒤로도 엄마는 한참을 더 이야기했고 난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 뒤론 엄마를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며칠 동안 아침 일찍 집을 나가셨다가 밤늦게 돌아오셨다. 그러곤 집에 들어서자마자 손에 잡히는 모든 걸 집어 던지셨다.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얼마나 더 많은 물건을 부술 수 있나 게임이라도 하시는 것 같았다. 본인이 깬 유리컵 조각을 밟고 피를 흘리기도 하셨다. 그럴 때면 잠시 물건 던지길 멈추고 욕만 하셨다. 그건 또 정해진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욕을 할 수 있나 하는, 그러니까 보너스 게임 같았다. 며칠 전 집을 나간 아버지는 여태껏 돌아오지 않으셨다. 엄마 냄새가 그리워 옷장을 뒤졌지만 어디에도 엄마 옷은 없었다. 옷걸이들은 벌거벗은 몸이 부끄러워 바닥에 낮게 엎드려 있었다. 한 개의 옷걸이만이 부끄러움을 참으며 힘겹게 매달려 옷장을 지켰다.

2015.06.27.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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