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뜨지 않으면 우린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달력 대신 차고 기우는 달로 날을 헤아렸다. 계절은 변하지 않을 듯 갑작스레 달라지곤 했다. 옷은 늘 두껍거나 얇았고 밤은 아무리 길어져도 짧았다. 지난 가을엔 장례식에 다녀왔다. 종이 한 장보다 짧아진 계절을 견디지 못해 떠난 이의 얼굴을 보며 나무의 나이테를 세듯 겨울의 횟수를 헤아려 보았다. 사람은 어떻게 지난 시간을 증명하는가. 요즘 나의 관심은 오로지 이것뿐이다. 증명해야 하는 시간은 늘어 가는데 쌓아 둔 것이 없어 또 하루 부끄러움만 더한다. 보름은 너무 밝아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그믐은 너무 어두워 나를 놓을 뻔했다. 모든 것이 핑계라 여느 밤이라 해서 다를 건 없었다. 짧은 밤에도 어둠은 진득한데 나만 쉬이 풀어지곤 했다. 그렇게 주춤거리다 오늘도 밤을 놓쳤다. 자신을 대신할 단어 하나 찾지 못해 또 하나의 달이 바스러진다. 고개를 저어도 한사코 돌아오는 시선이 두려워 하릴없이 어딘가에 누군가를 생각한다. 당신의 평안을 소원한다.

2015.10.2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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