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봉투에 쓴 세 글자가 엔딩크레딧에 새겨진다. 극장에서 단 한 번만 상영하는 영화를 보고 나오듯 장례식장을 빠져나온다. 스크린은 낯을 씻고 흰 얼굴을 보이고, 열린 문으로 쏟아진 생활의 빛에 놀란 많은 것들이 빈 좌석 아래로 숨는다.
줄 지어선 상연관 뒤 통로를 지나 거대한 관에 빽빽하게 실려 지상으로 내려온다. 열 개의 도장이 한 잔의 커피로 변하듯 사람은 타인을 통해 죽음의 흔적을 모으다 결국 그 앞에 마주 서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애써 고개를 저으면 머릿속엔 몇 개의 장면과 정확하지 않은 대사 몇 마디만 남는다.
시간은 감독이 되어 기억을 편집한다. 이미지는 변형되고 본 적 없는 장면을 찍기도 한다. 객석에 있던 내가 영화를 잡아먹는다. 필름은 확인할 길이 없고 같이 객석에 앉았던 사람들은 각자의 영화를 꺼내놓으며 목소리를 높인다. 장면과 장면이 충돌하며 영화는 해석에서 멀어진다. 존재한 적 없는 작품이 된다. 사람들은 이따금 지금껏 본 영화를 이야기하며 삶을 견딘다. 다시 극장에 갈 때까지, 서로의 엔딩크레딧을 채워주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적은 흰 봉투를 유서처럼 간직한 채, 살아간다.

2016.09.02.2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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