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어제보다 하얗고 잠잠합니다. 낮 동안 바삐 달린 바람이 자리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며 밤의 공백은 안개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빛의 흔적이 도드라졌지만 하얀 어둠은 몇 발짝 앞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지난밤엔 당신이 떠났습니다. 아니 아주 오래전 일이지요. 그러니 당신은 한 번 더 떠났습니다. 첫 만남은 반복되지 않는데 마지막 순간만 몇 번이고 꿈이 되어 나타납니다. 엔딩만을 반복하는 영화처럼, 나는 당신과 한 번 만나 수없이 헤어졌습니다. 꿈이니 한 번쯤은 다를 만도 한데, 다른 말을 하거나 다른 표정이거나 다른 이별이거나 이별이 아닐 수도 있을 텐데, 지독히도 같은 순간을 반복합니다. 한 번의 NG 없이 정해진 대사를 주고받고, 익숙한 표정을 짓고, 정확한 동선으로 멀어집니다. 당신이 사라지고 눈을 한 번 깜빡이면 방의 천장입니다. 꿈이라 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다시 눈을 감으면 시선은 당신의 뒤를 따라갑니다. 수없이 보았던 그 뒷모습의 다음, 본 적 없는 당신의 시간을 그립니다. 다시 하얀 밤입니다.

2017.01.18.2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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