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당신을 삼켰던 슬픔이 오늘 저를 찾아왔어요. 할머니로 변장하고 빨간 망토를 맞은 늑대처럼, 당신 향기를 두르고 다가온 슬픔에게 전 무방비하게 문을 열어주었어요. 알았더라도 문을 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너무 오랜만에 접한 당신 흔적이 반가워 슬픔을 깊이 안았어요. 싸구려 디퓨저처럼 향기는 빠르게 흩어졌지만 그 몇 번의 숨에 깊이 가라앉았던 당신의 흔적들이 모조리 수면 위로 올라왔어요. 밀어닥친 기억과 현실의 온도 차가 너무 커 뿌옇게 김이 서렸어요. 가슴을 메운 한기가 너무 시려 서둘러 잠을 청하고, 깨면 다시 잠들기 위해 뒤척였어요. 꿈에서도 당신을 볼 순 없었지만 현실만큼 불가능하진 않았으니까요. 여전히 저는 그 희박한 확률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어요.
해질 무렵에야 눈을 뜨자 무안한 표정의 슬픔이 옆에 앉아있었어요. 그렇게까진 아니었는데. 괜찮아 습관이라 그래, 네 탓이 아냐.
문득 제 흔적을 묻힌 슬픔은 누구에게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듭니다. 딱히 반겨줄 사람은 없을 거야, 그래서 누굴 속이지도 못할 거고. 그러니 바람에 몸을 씻고 가, 괜찮으면 조금만 같이 걷다 가. 슬픔의 손을 붙잡고 집을 나섭니다.
저물어 가는 해를 등지고 나란히 걷는 슬픔에게 슬쩍,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답이 없는 슬픔을 보며 고개 숙여 혼잣말 합니다. 잘 지냈으면 좋겠어.

2019.03.29.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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