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2022. 12. 25. 02:14 /2015-

오늘따라 옆 건물 작은 교회의
기도 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바람만 겨우 드나들 만큼 좁게 벌어진 창틈은
숨구멍인지 망가진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흔한 붉은 십자가 하나 옥상에 달지 못해
창문에 붙인 교회, 두 글자가 전부인 곳에서
누가 왜 저리도 간절히 소리치는 걸까요
어릴 적 물에 잠겼다 나오며 새로 태어났던 저는
이젠 왜 그 흔한 구절 하나 외지 못하고
저 좁은 창틈 사이로 들리는 소리들이
낯설기만 할까요
그때의 저는 또 언제 죽었기에
지금 저는 몇 번째인가요, 혹시 아실까요

종일 자신의 잘못을 헤아려봤다는 당신에게
저는 아무 기도도 해주지 못했습니다
괜찮다는 말이라도 했다면
당신은 여기 남았을까요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당신의 떨리던 두 손을 떠올립니다
부디
용서받을 수 있는 밤이길
당신 목에 그 두껍고 질긴 참회록이
물에 젖은 낱장 휴지처럼 쉬이 찢기길
손바닥에 붉은 십자가를 그리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기도를
아무도 들을 수 없을 만큼 작게 따라 합니다
부디 용서받을 수 있는 밤이길

2022.11.09.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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