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아직 떠난 사람을 잊지 못했다는 내게 넌 말했다. 뭐가 어떻게 괜찮을 수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떨리는 두 손을 꽉 쥔 채 겨우 울음을 참고 있는 네게 그럴 순 없었다. 그런 널 보면서도 그 사람이 본 내 마지막 모습이 이랬을까, 괜찮다고 말하는 날 보며 그 사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때의 난 스스로를 달래기 급급했다. 괜찮다는 말을, 내가 했던 그 말을 믿고 싶었다.
네가 없고 지금의 나도 없는 만남이었다. 그날 내가 안고 토닥인 게 울먹이는 네가 아닌 예전의 나였듯, 나는 그 사람이 되어 네게 겹쳐 보이는 예전의 나를 만났다. 대화를 나누고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 갈수록 상대는 내게 마음이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던 날들. 넌 그때의 나처럼 수시로 눈치를 살피고, 미안해하고, 갑자기 말이 많아지고, 종종 입술을 깨물며 애써 감정을 추스르곤 했다.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빠짐없이 내가 했던 행동들이었다. 그럴수록 난 더 밝고 애정 어린 사람이 되어 너를 대했다. 모르겠다. 이미 나를 잘 알던 너기에 그런 날 보며 더 힘들진 않았을지. 노력할수록 감춰지기는커녕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게 진심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난 입장을 바꿔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렇다고 간혹 멍해지고,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못내 티냈던 그 사람을 다 떨쳐낸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난 누구도 위로하지 못했고, 넌 예전의 내가 느꼈을 아픔까지 더해 더 많이 울었을 거다. 괜찮지 않은, 괜찮을 리 없는 관계였다.
생각해 보면 순전히 네가 견뎌냈기에 가능한 나날이었다. 나라면 이미 지쳐서 포기했을 텐데, 다른 감정이 더 커져서 좋아한다는 마음조차 가려버렸을 텐데, 넌 끝내 날 놓지 않았다. 하루 한 방울씩 떨어진 빗물이 끝내 수영장의 물을 새롭게 채우듯, 그렇게 넌 날 채웠다.
숨을 몰아쉬며 카페로 뛰어 들어와 내 앞에 앉은 너는, 나오려는데 상사가 갑자기 일을 맡겨서 늦었다고, 미안하다 했다. 조금 전에 메시지로 다 한 말을. 언제나 잘못도 아닌 일을 몇 번씩이나 사과하던 너다. 벌써 반년이 지났지만 난 네 손 한 번 작은 적이 없다. 나보다 몇 배는 조심스러웠을 너 역시. 나란히 걷다 어깨라도 스치면 흠칫 놀라던 너다. 말로 하진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내게 미안했다는 걸 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직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널 보며, 떨리는 네 손을 잡고 말한다. 괜찮아.

2018.02.26.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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