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미워했던 모두가 잠든 내 곁에 다가와 나를 쳐다보던 밤이었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깨어나 한참을 눈 뜨지 못한 채 신음했다. 손톱을 물어뜯던 쥐는 옥상 문을 열지 못해 계단 사이로 떨어졌다. 종일 먼지를 마셔 흐릿해진 눈을 비비며 돌아오면 손바닥 만한 무덤 하나를 새로 파야했다. 오늘 분의 죽음만큼 손톱이 자랐다. 건물 그림자 안엔 가지런히 줄지어선 검은 손톱이 가득했다. 동물을 땅에 묻으면 안 돼요, 일반폐기물로 버리셔야 합니다. 버리셔야 합니다. 하여 손톱은 고스란히 내가 저지른 죄의 증거였다. 죽은 동물을 태운 흔적이 공기 중에 가득해요, 햇빛의 시선을 따라 죽음이 반짝여요. 얼굴 가득 먼지를 뒤집어쓰고 몇 번이고 씻어도 닦이지 않는 시야를 더듬어 침대로 간다. 자리에 누우면 머리카락 깊숙이 숨었던 먼지가 머리맡에 쏟아지고 손 끝에선 죄가 자란다. 천장의 뒷면에서 먹이를 찾아 달리는 쥐 소리가 방보다 크게 내려앉는다. 눈꺼풀이 나란히 무덤 두 개를 만들며 오늘의 죽음을 알린다. 날 미워했던 사람들이 문 앞에 줄을 서 있다.

2019.02.28.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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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바지런히 방안을 오가며 옷을 정리한다. 남자는 거실 소파에 앉아 여자를 기다린다. 이별을 받아들이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몇 번의 결심을 반복한 끝에 사진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정리하기로 했다. 결정을 마치고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마지막 미련을 접어 보내기로 했다.
여자는 한 벌 한 벌 정성껏 옷을 개었다. 그녀가 마음을 담아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느린 동작이었지만 서랍은 금세 텅 빈 속을 드러냈다. 새것과 다름없는 옷들이 곱게 개여 상자에 담겼다. 많아야 두 번 입었을까.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여러 벌, 그중엔 선물로 받은 것도 꽤 있었다. 사람들의 축복은 정리해야 할 짐이 되었다. 무안하게 고개를 돌린 옷가지 위에 마지막으로 한 번 꺼내 보지 못했던 신발을 올려놓았다. 뚜껑을 닫은 뒤 그 위를 한 번 쓰다듬던 여자는 끝내 상자를 부여잡고 고개를 떨궜다. 여자의 울음소리를 듣는 남자의 마주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맞은편에 놓인 텔레비전 화면엔 소파에 앉아 겨우 눈물을 참는 남자의 모습이 비쳤다.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받아주셔서 저희가 더 고맙죠. 좋은 곳에 쓰였으면 좋겠네요.
짧은 인사를 주고받고 두 사람은 빈손이 되었다. 모든 물건, 이라고 했지만 상자는 그 주인만큼이나 작고 가벼웠다. 두 사람은 상대를 먼저 들여보내고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분명 짐을 든 사람이 걸어가고 있음에도 두 사람 눈에는 상자와 그 안에 담긴 물건들만 떠가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 작은 옷과 신발이, 그 모든 걸 가졌어야 할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소리 없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잘 가렴 아가야.

2013.10.05.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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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안에 앉아 마음을 세공했다
까마귀가 무서워
반짝이는 건 서랍 깊은 곳에 두고
빛을 삼키는 것들만 들고나갔다

이가 빠진 책장 그늘에 앉아
당신의 하루를 상상했다
책에 묻은 바깥 냄새를 맡으며
책장은 세길 수 없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빈 서랍 안에선 까마귀가 울고
책장과 책은 서로의 고향을 묻는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마음을
머리끝까지 덮고 죽은 시늉을 한다

잡을 수 없을 만큼 오래 다듬어도
빛나지 않는 마음을
한껏 들이마시고
기침을 한다

다시 돌을 뱉는다

2019.04.06.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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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소리 내 말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두근거리는 이 열 글자에는, 반짝임만큼의 절망이 담겨 있다.
고민이 있어 술 한 잔하고 싶은데 괜찮냐는 물음에 넌 당연하다며, 당장 내일 보자고 말했다. 일을 마치고 저녁이 되어 만난 우린,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근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볍게 몇 마디를 주고받다 술이 나오고 나서야 난 그 사람 얘기를 꺼냈다.
몇 달 됐어. 알고 지낸 지는 꽤 됐는데, 한동안 연락 못하다가 얼마 전에 다시 만났거든. 예전엔 아무 감정 없었는데 다시 보니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떨리는 거야. 처음엔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워 그런 줄 알았는데, 그 뒤로 계속 연락하면서 가끔 얼굴보다 보니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더라.
연락도 계속하고 가끔 만나기도 했어? 그럼 그쪽도 너한테 마음 있는 거 아냐?
아닌 것 같아. 그 사람은 그냥 친구 대하듯 하거든.
아냐, 남자들은 마음 없는 사람한테는 연락도 안 하고 만나지도 않는다잖아. 먼저 연락 오거나 그러진 않고?
그냥 가끔.
주로 무슨 얘기 해? 만났을 땐 뭐하고?
다 비슷하지 뭐. 요즘 무슨 일 있었는지, 뭐 재밌거나 힘든 일은 없는지, 그런 얘기하고. 만나면 영화 보고, 밥 먹고, 카페 가거나 가끔 술 한 잔하고.
둘이 술도 마셔? 얘기만 들으면 썸도 아니고 이미 사귀는 사인데?
아냐 진짜. 그냥 친구 같다니까. 너하고 별반 다를 거 없어.
남녀 사이는 다르지. 그 사람도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은데?
그랬으면 좋겠다.
네가 너무 둔한 거 아니고? 그쪽에서 표현한 적은 없어? 손을 잡는다거나 뭐 그런 거.
전혀. 그리고 나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 아닌 거 알잖아.
모르지, 눈치 빠른 사람도 정작 본인 일엔 둔하고 그렇잖아.
진짜 아냐, 아무 표현도 없었어.
분명 뭐가 있는데. 아니면 네가 너무 내색을 안 해서 그 남자도 조심스러운 걸 수도 있고. 네가 먼저 티를 내 보는 건 어때?
그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닌데.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니,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
뭔 소리야, 사람 좋아하는데 그런 게 어딨어. 요즘은 나이나 국적도 안 따지고 잘만 만나던데.
그렇긴 한데.
뭔가 문젠데? 여자 친구 있는 사람이야? 아니면 유부남?
아냐 그런 거.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말하면 안 될 거 같아.
끝내 너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그 사람을 만난 곳은 고등학교 동창회였다. 얼마 전 너와 몇 년 만에 만난 그 자리에서 난 그 사람을 만났다. 차라리 그 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좋았을 걸. 난 몇 번이고 후회했다.
너는 모른다. 말을 하면 할수록 너와 내가 다른 세상에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는 걸. 그럴수록 난 더 죄를 짓는 것 같고, 계속해서 내게 '그 남자'라 말하는 네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걸 넌 모른다.

2015.04.22.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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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도착해서야 사람들과 첫 마디를 나눈다. 가장 큰 변화는 대화였다. 혼잣말이 늘고 나누는 말은 줄었다.
쉴 틈을 줄여 전보다 조금 더 바쁘게 일한다.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들어오는 길엔 꼭 한두 명씩 밝은 표정으로 통화 중인 사람들이 눈에 띈다. 친구나 가족일 수도, 혹은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는데 쉽게 연인과 통화 중일 거라 단정 짓곤 괜히 의식해 외면한다. 사무실에 돌아와 앉아선 휴대 전화의 빈 화면을 물끄러미, 할 일을 잃고 널부러진 충전 케이블을 본다. 충전할 일이 줄었다. 원래 이렇게 배터리가 오래 갔던가. 시간은 조금 빠르게, 그 틈은 더 넓게 흘렀다. 초조해지는 일이 줄었고 휴대 전화 화면을 한 번씩 켜 보던 습관은 공연히 시간만 확인하게 했다.
조금 늦은 퇴근을 하며 오늘은 어디서 저녁을 먹을까 고민한다. 먹을 수 있는 메뉴, 특히 저녁 외식 메뉴의 선택지가 줄었고, 그래서 늘었다. 2인분씩 파는 음식은 먹을 수 없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내 마음대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잠시 식당가를 걸으면 방황하다 좋아하지만 한동안 먹지 못했던 메뉴로 결정해 식당에 들어선다. 그러고 보면 전에도 오려면 올 수 있던 식당인데 왜 안 그랬을까 의아하다. 혼자 저녁 먹는 일이 아예 없던 것도 아닌데 왜. 꽤 많은 일이 그랬다. 혼자인 순간에도 혼자라 생각하지 못했던 날들. 하나를 당연히 여기다 다른 여럿을 잊었던 시간. 결국 하나만 남은 지금.
즐겨가던 카페에 들리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온다. 손님이 없을 땐 주인과 꽤 길게 이야기를 나눌 만큼 단골이었지만 이젠 찾아가는 것도 어렵지 싶다.
이제 오늘은 다른 사람과 더 대화할 일이 없구나, 현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생각했다. 씻고 나와 냉장고에서 맥주 캔을 꺼낸다. 일주일에 한 번을 사도 부족했는데 이젠 2주가 되도록 아직 몇 캔이 남았다. 영화 사이트를 켜 추천 작품을 보다가 중간중간 섞인,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분명 취향이 아닌 작품을 보며 이걸 어쩔까 고민한다. 시청 목록을 한 번 다 지울까, 다른 작품을 많이 보면 자연스레 밀리지 않을까. 목록 삭제 버튼까지 갔다가 아니오를 누르고 이전 메뉴로 돌아온다. TV 시리즈 하나를 선택해 재생하고 혼자 대화도 감탄사도 아닌 어정쩡한 말을 몇 번 하다 이내 조용히 화면만 본다.
휴대 전화는 집에 와 책상에 올려놓은 그대로다. 주인을 따라 말이 줄어든 휴대 전화와 함께 고요히 하루가 지나간다. 공들여 그리던 풍경화의 시간대를 바꿔 수정하듯, 함께 했던 시간 위에 다시 각자의 일상을 덧칠한다.

2018.02.19.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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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雨期)

2019. 3. 19. 23:00 /2015-



요즘 어때, 잘 지내?
우린 매일 울어 몸이 젖은 종이처럼 흐물거려
누구라도 부딪히면 찢겨 버릴 것 같아 사람들을 피해 다녀
아무도 우리가 우는 걸 몰라 우리도 우는 사람을 본 적은 없어
우리만 우는 건 아닐 텐데 다들 어디 숨어 우는 걸까
울다 눈 감으면 잠들어 일어나 목이 말라 물을 마시다 또 울어
우울증이래 마음이 아픈 거라며 병원에 가 보래
우린 우울하지 않은 걸 그저 눈물이 계속 날 뿐이야
그냥 울어,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숨 쉬듯 울어
어쩌면 숨을 쉬기 위해
울어

2017.08.10.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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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

2019. 2. 28. 23:57 /2015-



서서히 자라 서둘러 죽어가는 식물이 되어
햇볕이 잊은 창가 구석
그늘에 몸을 담그고 살아요

내 그림자 한 번 보지 못한 채
바람이 던진 볕이 화분 끝을 스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밤은 공평히 어둠을 흘리고
방안이 모두 잠기면
가장 먼 천장 구석까지 팔을 뻗어봐요

나는 방을 메운 거대한 식물이에요
어제까지 자라 오늘 죽은
식물이었던 무엇.

2018.12.31.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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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hole

2019. 2. 19. 23:54 /2015-


거기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가시광선을 거의 100% 흡수하는 검은 물질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 예술가가 독점하던, 제조 과정이 까다롭다던 이 물질이 어떻게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 기업이 생산권을 독점한 채, 딱 한 공장에서 모든 생산을 도맡아 했지만, 독점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상품의 가격은 저렴했다. 검은 물질은 다른 물감, 스프레이, 페인트와 같은 형태로 유통되었다. 별다른 포장이나 제품명도 없이 그저 '검은 잉크'라고 적힌 채. 상품 이름이라기엔 지나치게 단순했지만 그 압도적인 검정에 '검은 잉크'는 그 제품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각 분야, 특히 과학계와 예술계, 은밀히는 군사업계에서 이 검은 잉크를 어떻게 사용할지 기대와 우려가 이어졌다.
가장 빠르게 반응한 건 과학도 예술도, 군사업계도 아닌 SNS였다. 처음엔 구입 인증샷이 이어지더니 곧 검은 잉크를 사용한 후기들이 쏟아졌다.
검은 잉크로 칠한 물건을 들고 사진을 찍어 허공이나 몸에 구멍이 난 듯 보이게 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그 뒤 검은 잉크를 칠한 종이를 들고 있다 그 뒤에서 손이 뚫고 나오거나, 책상이나 바닥에 칠한 뒤 위에 물건을 두거나 사람이 서서 허공에 뜬 것처럼 보이게 하고, 커다란 벽 하나를 통째로 칠해 이질적인 풍경을 만들거나, 손바닥이나 손등, 몸이나 얼굴에 칠하는 사람도 있었다. 혼자 칠하는 것에 이어 누군가를 골탕 먹이기 위해, 예컨대 익숙한 공간에 갑자기 생긴 구멍을 보고 놀라 발을 피하다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게 하거나 거리감을 알 수 없는 점을 이용해 막대기나 기둥을 칠한 뒤 걸려 넘어지거나 부딪히게 하는 영상이 속속 올라왔다. 검은 잉크가 익숙해지며 당연히 잉크를 칠한 거라 생각했지만 실은 진짜 구멍이었다는 식의 반전 영상도 등장했다.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검은 잉크 관련 게시물엔 #blackhole 태그가 붙었고, 이는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퍼져 나갔다. 검은 잉크를 이용해 누가 더 기발한 발상의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지가 경쟁이 되었고, 그와 함께 크고 작은 구멍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학생 한 명이 맨홀에 빠져 죽으며 장난은 더 이상 장난이 아니게 되었다. 왜 도로 한가운데 맨홀 뚜껑이 열려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학생이 구멍을 보지 못한 것인지, 보고도 검은 잉크를 칠한 것이라 생각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언론이 '검은 잉크로 만든 구멍과 착각해 맨홀에 떨어져 숨진 학생'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를 하며 사람들은 그렇게 믿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검은 잉크와 관련된 사건사고가 연일 보도되었다. 지금까지는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는 듯, 알지만 말해선 안 되는 비밀이었다는 듯, 학생의 추락사 이전에 벌어졌던 사고들까지 쏟아져나왔다. 벽에 칠한 검은 잉크를 주차장 입구와 혼동해 차로 들이박은 사건이나, 진짜 구멍인 줄 알고 급하게 핸들을 틀다가 혹은 보행 중 넘어져 다친 사고 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맨홀 추락사를 접한 뒤 사람들은 구멍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불안감을 이용해 보행 중 진짜 구멍인지 검은 잉크인지 구분할 때 쓰라며 지팡이를 판매하는 곳이 생겨났다. 아직 안전성이 완벽히 검증되지 않은 물질이라며 판매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검은 잉크를 몸에 칠했다가는 피부암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하는 의사가 방송국을 옮겨 다니며 같은 말을 반복했고, 어째서 이런 위험한 물질이 판매되도록 방치한 것이냐며 정부를 탓하는 정치인과 검은 잉크로 인해 발생한 사고의 책임은 잉크를 칠한 사람과 방치한 사람, 판매, 생산한 사람이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의견을 제시하는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잉크를 손바닥 크기보다 크게 칠하면 안 되며, 벽과 바닥에는 아예 칠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곳곳에 붙었다. 국회에서는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비슷한 관련 법안 제출이 줄을 이었다. 그 많은 법안 어디에도 그럼 검은 잉크를 어디까지 금지해야 하는지, 이미 생산, 판매된 물건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고민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종교계는 검은 잉크가 빛을 지우고 사람을 현혹하는 사탄의 물질이라 했다. 사용은 물론 생산도 중단해야 한다며, 검은 잉크의 제조 회사와 공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이미 칠해진 검은 잉크를 지우기 위해 많은 사람이 투입됐다. 하루에도 수만, 수십만 개의 구멍이 닫혔다.
지금까지의 여러 일과 마찬가지로, 그 사고가 고의인지 과실인지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 이미 무언가를 밝히기엔 늦었지만, 검은 잉크를 만들던 공장에서 유출 사고가 났다. 정확히는 폭발이었지만 유출의 영향이 훨씬 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로 배송 관과 보관 탱크가 터졌다. 보관 탱크에서 검은 잉크가 터져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흘렀고, 폭발과 함께 위로 기운 배송 관으로 검은 잉크가 계속 유입되며 하늘 높이 뿜어져 올랐다.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검은 잉크가 공장은 물론 주변 건물 일부를 뒤덮은 뒤에야 사고를 수습할 수 있었다. 수습이라기엔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진 뒤였다. 그동안 검은 잉크로 만든 수많은 구멍 사진이 SNS에 올라왔지만 이렇게 거대한 건 없었다. 고스란히 드러난 건물의 실루엣이 정교한 구멍이 되어 우뚝 솟았다. 발 빠른 방송국 관계자가 드론부터 띄웠다. 드론에 달린 카메라는 공장지대 가운데 생긴 거대한 구멍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말 그대로 blackhole이었다. 앞다투어 방송국이 속보를 전하던 그때, 공장 안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온몸에 검은 잉크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구멍에서 팔다리를 하나씩 꺼내듯 걸어 나왔다. 허공에 하얀 눈동자만 떠 있는 사람들이 거대한 구멍 한가운데서 걸어 나오는 모습은 어떤 의미에선 더 없이 종교적이었다.
이날 유출된 검은 잉크는 지워지지 않았다. 중화가 덜 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많은 양에 노출되어서인지 공장은 물론 사람들에 묻은 잉크 모두 지워지지 않았다.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많은 말이 오갔고, 피부과와 성형외과 의사들이 모여 피부를 벗겨내면 새살이 돋아날 것이다, 피부를 이식하는 건 어떨까, 색소 치료를 반복하는 건, 새로운 잉크를 만들어 덧칠하는 건, 등 여러 진단을 내놓았지만 소용이 없거나 현실성이 없었다. 밤에도 눈에 띌 정도로 선명한 색이라, 검은 잉크를 뒤집어쓴 사람들은 어딜 가든 눈에 띄었다. 투명 인간이 자신의 정체를 가리기 위해 장갑과 마스크, 선글라스 등을 쓰듯, 이들도 온몸을 가려야 했다. 한 언론사에서 이들의 피해 상황을 취재한 뒤 '검게 변한 노동자, 산 채로 죽은 이들'이라는 기사를 냈다. 검은 인간, 걸어 다니는 구멍, 인간 구멍 등 희화화와 동정 어린 시선이 뒤섞인 댓글이 달렸고, 이튿날, 한 아파트 단지 가운데엔 붉은 피를 흘리는 사람 모양의 구멍이 생겼다.
검은 잉크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아무 대책 없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공장은 '현대 사회의 거대한 공허를 드러낸 작품 같다'는 한 유명 평론가의 말과 함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안전 정비를 마친 공장은 관광지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거대한 공허' 가운데서 사람들은 두려워하거나 좌절하기도, 신비로워하거나 들뜨기도, 손을 잡은 사람과의 연대나 홀로 떨어진 고독감을 절실히 느끼기도 했다. 이유와 감상은 모두 달랐지만 공장의 현장감은 분명 압도적이었고, #blackhole은 공장 방문을 인증하는 사진에 붙는 태그로 바뀌었다. 공장 안 한 편에는 생산설비를 정리해 놓은 공간이, 한 편에는 사고로 인간 구멍이 된 사람들을 대신하는, 검은 잉크를 쓴 마네킹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손가락 하나 크기부터 팔뚝 크기까지, 검은 잉크로 칠한 공장 혹은 사람 모형을 팔았다. 외국인이 줄을 서가며 방문하는 유명 관광지 하나 없던 나라에, 처음으로 거대한 테마파크가 생겼다.
매일 수만 수십만 명이, 현대 사회의 거대한 공허 위를 걷고 만졌다.

2018.12.21.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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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지고 색이 바랜 유화를 복원하듯
흑백 사진을 색칠하던 밤이었다
눈 내리는 밤엔 창을 칠했다
물감은 쉽게 지워지고 입김은 오래 남았다
밤새 부끄러운 성당이었다

손끝에 굳은 물감을 손톱으로 긁어내면
알록달록한 먼지가 만들어졌다
곱게 쓸어 모은 먼지를
잘라낸 열개의 초승달에 붙여
찢어진 캔버스를 이었다

흔적 없이
우는 일에 능숙해진 겨울이었다

2018.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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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이 늘었어요.

2019. 1. 19. 23:38 /2015-



혼잣말이 늘었어요. 갈 곳 없는 말이 집 안 곳곳에 묻어납니다. 미끄러운 말에 넘어지고, 오래된 말이 끈적이며 달라붙기도 합니다.
하루는 조용히 집 안에 쌓인 말을 치웠어요. 불필요한 말을 왜 이리 많이 했을까, 그런 말이나마 뱉어야 했던 걸까, 생각하며 종일 바쁘게 청소를 한 뒤 자리에 누우니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하루가 갔구나, 아무 말도 없는 집 안이 너무 고요해 몸이 옥죄었어요.
벙어리가 된 저는 당신을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런 꿈을 꾸었어요.
언젠가 정말 말을 잃을 것 같아요. 대화 없이 얼마나 오래 말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혼자하는 말은 점점 형태를 잃어 갑니다. 수화를 배워야 할까요. 움직임은 소리보다 단단할 테니까. 하지만 배운들 쓸 일이 있을까요. 또 망설임이 늘었습니다.
오래된 냉장고는 한 번씩 길게 비명을 질러요. 듣다 못해 플러그를 뽑았다 꼽으면 냉장고는 비명을 멈춥니다. 짧은 죽음이 비명을 데려갑니다. 어떤 말은 죽어야 멈출 수 있습니다. 어떤 말은 죽음 뒤에도 남겨집니다. 그 경계를 구분하지 못해 죽은 뒤 남을 말이 두려워 말을 삼킵니다. 그렇게 벙어리가 되고, 혼자가 되어서야 재채기처럼 뱉어냅니다.
뭉개진 자음과 모음 사이에서 말은 소리가 되어 죽처럼 흐릅니다. 먼지만 적시며 방을 더럽히는 말들 사이에서 저는 또 미끄러집니다. 끈적이는 말이 몸에 붙어 쉬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깨면 다시 아무 말 없이, 방을 치웁니다. 정적을 채우는 하루가 갑니다.

2018.12.29.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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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의 기억에 먼지처럼 쌓여요
낮게 엎드려 보이지 않다가 한 번씩 떠올라
잠시 뿌옇게 보이다 다시 가라앉고
있는 듯 없는 듯 낮게 누워있어요
뭉쳤다 흩어지고
닦아내도 다시 쌓이는
먼지로 있어요

한 번도 닦은 적 없어 시커메진 창틀 구석에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봐요

눈 앞이 뿌옇게 일렁여요
누가 또 먼지를 일으켰는지
먼 곳에서 먼지바람이 불었는지
커튼 사이를 찌른 햇살에
먼지들이 알알이 모습을 드러내요
부유하는 먼지를 보며 예쁘다 말해요
종일 재채기를 참지 못한 하루였어요

2018.12.23.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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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었던 기억을 세어본다. 대부분은 영화나 드라마, 소설이나 만화를 봤을 때다.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닌 다른 누군가, 그것도 현실이 아닌 이야기를 보고 듣고 울었다.

어릴 땐 참 많이 울었다. 가장 많이 울었을 땐 혼이 났을 때다. 그러다 울면 왜 우냐고 혼이 났다. 우는 이유를 말하라고 했고,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하면 그게 말이 되냐며 혼이 났다. 그래서 더 울었다. 아마 그때부터는 억울해서 눈물이 더 났던 것 같다.

억울해서 운 적은 몇 번이 더 있다. 한 번은 문구점에서 친구들과 100원짜리 종이뽑기를 했는데, 난 분명 돈을 냈는데 내지 않았다며, 거짓말을 한다며 도둑놈 취급을 당했을 때도 울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 초등학생에게 100원은 작은 돈이 아니었다. 하루 동안 가지고 다니는 돈이 천 원이 채 안 되는데, 어디에 썼는지 쓰지 않았는지 헷갈릴 리가 없었다. 주머니에 동전 몇 개가 남았는지 세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을 정도인데. 옆에 있던 친구들도 분명 내가 돈 내는 걸 봤다고 했지만 문구점 주인은 완강했다. 오히려 다 같이 도둑놈이 되었을 뿐이다. 문구점 주인은 내가 울든 말든, 친구들이 당황을 하든 말든 돈을 낼 때까지 기다렸고, 끝내 100원을 더 내고서야 문구점을 나올 수 있었다.

중학교 때는 무슨 이유에선지 체육 시간에 체육복을 입지 못하고 간 적이 있다. 체육 선생은 내게 체육복을 입지 않아 수업은 듣지 못할 테니 수업 시간 내내 체육관 구석에서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으라 했다. 45분인가 50분 동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체벌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 수업은 그리 격렬한 내용도 아니었다. 배구공을 던지고 받는, 아마 그런 과정의 반복이던 걸로 기억한다. 애초에 수업과는 관계없이 체육복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본이 안 되었다고 생각해 강한 체벌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무슨 이유가 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의지와는 관계없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라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적당히 체육 선생이 볼 때만 제대로 하는 척하며 요령을 피울 만도 한데, 그때는 악에 받쳐 보든 말든 최대한 정자세를 유지하려 했다. 팔이 떨리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온몸이 다 떨렸다. 그마저 시간이 더 지나자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30분이 지났을 때부턴가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걸까,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걸까.
종이 울린 뒤에야 일어났을 땐, 몸이 허공에 뜨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팔은 다시 떨렸고, 다리는 걸을 때마다 어색하기만 했다.

그 외에도 중학생 때까지는 참 많이도 울었다. 다른 아이들이 우는 모습은 별로 못 본 것 같은데, 난 사람들 앞에서도 잘만 울었다. 그때 너무 울어서 지금은 울지 못하는 걸까.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못해 스스로를 위해 울지도 못하다니. 우는 방법은 또 언제 잃어버린 걸까.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걸까.

201X.10.20.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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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남짓 비가 왔다.

2018. 10. 19. 23:24 /2015-

3주 남짓 비가 왔다. 쏟아지다 약해지길 반복했지만 단 한 번도 멈추진 않았다. 방울진 빗소리가 방안에 가득했다. 어딜 가도 몸에 물방울이 맺힌 느낌이었다.
네가 머문 지 3주가 지났다. 너와 나는 같은 역 근처에 살았다. 내가 사는 집은 역 바로 앞이었고, 너의 집은 십 여분 거리에 있었다. 비가 오기 시작한 날, 너와 난 짧은 만남 뒤 함께 돌아오던 길이었다. 두 사람 다 우산이 없었고, 난 하나뿐인 우산마저 며칠 전 잃어버린 터였다. 비 좀 멈추면 가. 충동적으로 나온 얘기에 넌 무슨 생각인지 그러겠다 했다. 내가 그랬듯 너 역시 이렇게 비가 오래 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기록적인 장마였다. 누군가는 곧 멈출 것이라 했지만 정작 비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수구가 마시던 물을 뱉어내며 도로는 하천이 되었다. 차오르기 시작한 물은 한 시가 다르게 불었고, 불어난 물은 오래 굶은 짐승처럼 손길이 닿는 대로 집어삼켰다. 인도와 차도가 모두 수로가 되었고 건물 한 두층이 잠기는 데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TV에선 많은 말이 오갔지만 결론은 늘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우였고, 대책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에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이대로 비가 멈추지 않으면 어쩌지? 성서엔 40일 동안 비가 온 일이 적혀있어. 밤새 쏟아붓는 비에 온 세상이 잠겼대. 비 온 지 며칠이 됐지? 20일 정도? 벌써 그렇게 됐나. 그러게 벌써. 앞으로 20일 더 오면, 세상이 잠길까? 글쎄, 그래도 언젠가부터 더 높아지지 않는 것 같은데? 그러게, 한 번에 많이 내리는 건 아니라서 그런가. 흘러가는 양하고 비슷한가 봐. 그나마 다행인 건가. 그래도 20일이면 지금까지 온 만큼이 더 오는 건데? 그런가. 응. 뭐 한 두층은 잠길 수도 있겠다. 그럼 그 상태에서 20일이 더 오면? 조금 더 많은 곳이 잠기겠지. 어쩌면 어떤 건물들은 물에 완전히 잠길 수도 있겠다. 그래도 세상이 잠기진 않겠지? 음, 아마 그렇지 않을까? 높은 건물도 많고, 그보다 높은 산도 많으니까. 20일이 더 오면? 글쎄, 그러면 다 잠길지도 모르겠다. 그쯤 되면 더 이상 흘러갈 곳도 없어서 오는 대로 다 차오를 테니까. 그렇구나. 비가 멈추면 돌아갈 거야? 그래야겠지? 벌써 3주나 집을 비워둔 걸. 돌아가면 보일러 켜서 습기도 좀 빼고, 환기도 시키고 해야지. 응, 그래야지. 만약에 비가 안 멈추면? 이대로 20일 더 비가 오면? 그러고 또 20일, 다시 20일 비가 계속되면, 여기 있을 거야? 아니, 잠기기 전에 더 높은 곳으로 가야지, 여긴 그렇게 높지 않으니까. 그러네. 여긴 그렇게 높지 않지. 응, 비가 계속 오면 더 높은 곳으로 가자.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으로. 그래, 같이 가자. 응, 같이.
약속이라도 하듯 너와 난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더듬었다. 맞닿은 손 끝에 작은 빗방울이 맺혔다.

2014.07.03.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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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간 달팽이를 아십니까? 왜 욕조에 누웠을 때, 담배 한 개비와 녹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길을 나섰을 때 다가왔다는 그 달팽이 말입니다. 그래요, 아무도 가지 못한 바다로 가겠다던, 기억에 파도소리가 들린다던 그 정신 나간 달팽이 말입니다. 글쎄 그 달팽이가 끝내 바다로 갔다고 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해와 달이 수없이 바뀌고 계절이 몇 번을 오가도록 달팽이는 계속 한 방향으로만 갔습니다. 차에 치이거나 누군가의 발에 밟힐 뻔한 일이 비일비재했답니다. 들짐승이 나오는 곳은 뻔하지만 차와 사람은 어딜 가든 있으니까요. 어떻게 그 많은 발과 바퀴를 피했는지 도무지 신기한 노릇입니다. 게다가 방향은 또 어떻게 그리 잘 잡은 건지. 조금만 틀어졌어도 시간이 배는 걸렸을 겁니다. 배가 뭡니까. 곱절의 곱절은 걸렸겠죠. 정말 기억이 남아 있기라도 했던 건지, 참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렇게 바다에 간 달팽이가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죽었습니다. 바닷가의 소금기는 달팽이에게 쥐약이었던 것이지요. 우습지 않습니까? 오직 바다만 보고 갔는데 말입니다. 그 많은 발과 바퀴를 피하며 간신히, 정말 기적적으로 갔습니다. 그 결과로 죽은 겁니다. 죽을 자리를 찾아 간 꼴이란 말입니다.
바다 가까이 다다랐을 때 몸이 자꾸만 쓰라리고 아파오자 달팽이는 무리한 탓이라 생각했습니다. 여독이라 여긴 거죠. 그게 아니었습니다. 바닷바람에 섞인 소금기 때문입니다. 달팽이가 느낀 건 여독이 아니라 바다에 더 가까이 가지 말라는 몸의 비명이었던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달팽이는 계속 바다로 갔습니다. 약에 취해 판단력을 잃은 사람처럼 말입니다.
애초에 바다는 달팽이가 꿈꿔선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분에 넘치다 못해 목숨을 앗아갈 목표였으니까요. 누구도 달팽이에게 바다로 가선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갈 거라 생각을 못 했겠죠. 어떻게 달팽이가 바다에 갈 거라 생각하겠습니까. 허황된 꿈이나 꾸고 있구나, 장식처럼 가지고 다니다 푸념할 때나 쓰는 그런 꿈이구나, 그렇게 여긴 겁니다. 많이들 그러니까요.
한 순간이나마 바다를 보았으니 행복하지 않았겠냐고요? 짧지만 강렬한 감탄, 환희, 처음 보는 풍경의 경이로움과 꿈을 이뤘다는 성취감. 맞습니다. 그런 희열을 맛볼 수 있다면 고통스러운 시간도, 목숨도 얼마든지 내던질 수 있다고 믿는, 혹은 정말 그렇게 산 사람도 있죠. 누군가는 달팽이를 부러워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말이죠, 혹시 최근에 바다 다녀오신 적 있으신가요? 아니 그러니까
달팽이가 꿈꿨던 바다가 그런 모습이었을까요?

2015.10.17.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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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24:47.

2018. 9. 29. 23:59 /2015-

우리는 각자의 지옥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주고받아요
희망을 말하는 건 규칙에 어긋납니다

어둠이 우릴 구원할 거야
인사말이 된 문장을 읽으니
파사삭
손 끝이 공기 중으로 흩어집니다

시계를 부수면
새해가 오지 않을 거라 믿는 사람들이 있대요
어제는 떨어진 달력으로 만든
시계를 책상 앞에 걸어 놓았어요

마지막으로 울었던 게 어디예요
슬픔이 떨어진 자리에선
무엇이 자랄까요
어디는 여전히 언제를 좋아합니다

방에 쌓인 먼지를 모아
봉투에 담아 보내며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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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5.25:37.

2018. 9. 29. 23:59 /2015-

어떤 날엔 기적이 찾아와 잠든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옆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보다 가기도 했다. 그런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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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아닙니까. 저만 다른 곳인가요. 같은 세상이라 믿을 수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아니라면 그러면 안 되는 거였지요.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다고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도 자식에겐 인정이 넘치는 법이라 했습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내 부모가 아닌 게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라면 자식에게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충분히 이해가 되는 건 아닙니다. 제 얘기를 들은 누가 그랬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럼 그들은 사람도 아닌 건가요. 그런데 왜, 아니 그럼 그들 말고도 지금껏 제가 만난 수많은 사람 아닌 것들은 무엇인가요. 사람은 원래 그렇게 적은 건가요. 모든 세상이 다 그런가요.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까요. 뭔지 모르는 걸 베풀 수 있는 걸까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건,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시를 쓰라고 하면, 대체 뭘 어떡해야 하나요. 사람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사랑이 뭔지 알 수 있는 건가요. 받아 본 적 없어도 베풀 수 있는 게 사랑인가요. 그래서 ‘사람’과 ‘사랑’은 서로 닮은 모습인가요. 그럼 어떻게도 사랑을 모르는 저는, 역시 사람이 아닌가요. 부모가 사람이 아니었으니 자식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그런 관계만 반복해 온 건가요. 그러고 보면 인간미 없다는 얘길 수도 없이 들어오긴 했습니다.
가끔 궁금합니다. 저는 말을 들을 순 있지만 할 순 없습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수화뿐입니다. 지금껏 제가 만난 사람들은 누구도 수화를 배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왜 말을 하지 않느냐고, 어서 말을 하라고 닦달했습니다. 모두, 제가 말을 못 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제가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대한 건가요. 사람이건 아니건 그들의 말은 제 안에 쌓입니다. 제 움직임은 말이 되지 못한 채 흩어집니다. 저는 쌓인 말에 수시로 숨이 막힙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제 움직임은 커져만 갑니다. 짐승이 되어 가는 기분입니다. 결국 사람이 아니게 됩니다. 역시 여긴 다른 세상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아니게 된 저는, 당신이 부럽습니다.

2017.09.07.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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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밤 아세요?

2018. 5. 9. 23:46 /2015-

그런 밤 아세요? 집에 돌아왔는데 불을 켤 힘이 없는 거예요. 아니 불을 켜고 싶지 않았던가. 그냥 앉아 있었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눕지 않고 앉아 있었어요. 피곤하지 않은 날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더 힘든 날은 아니었어요. 너무 평범해서 지나고 나면 그런 날이 있었나 기억도 안 나는 날 있잖아요. 실은 건너뛰었는데, 시간이 어떻게 그래, 라면서 뭐라도 했겠지 생각하게 되는 그런 날. 그 날을 살지 않았어도 크게 지장이 없는 날. 그러니까 산 것 같지 않은 날이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 안 나요. 생각을 하긴 했을까요. 눈을 뜬 채로 기절한 듯 앉아 있었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모든 게 정지한 거예요. 창이 아니라 극장의 화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그냥 다 멈췄어요. 아니 물론 방 안에 딱히 움직일 건 없죠. 그래도 왜 구름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는 게 보이잖아요. 달이 밝게 뜬 밤이면 창으로 비치는 달빛에 구름 그림자 지나는 게 얼핏 보이기도 하고. 그땐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볼 일도 없고 장식은 더더욱 아닌데 괜히 걸어 놓은 시계 초침도. 아무것도 움직이는 게 없었어요.
심장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기분 아세요? 너무 조용하니까 몸이 뛰는 게 들리는 거예요. 느껴지는 게 아니라 귀에 들렸다고요. 숨 쉬는 소리도, 특히 숨을 내쉬는 소리가 너무 커서 놀랐어요. 뭔가 잘못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깨우면 안 되는 걸 깨울 것 같은, 혼자 게임의 룰을 어기는 것 같아서 잠깐 숨을 멈췄다가 도저히 안 되겠기에 아주 조금씩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작게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했어요.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죠. 사람은 참 시끄러운 동물이에요.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조금만 움직여도 여기저기 소리가 나요. 그러지 않으려면,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해요.
천천히, 코앞에 잠든 맹수에게서 도망치려는 듯 조심스럽게 움직였어요. 아닌 게 아니라 사방에서 절 노려보는 느낌이었어요. 뭔지 모를 것들이 어둠 속에 숨어서, 제가 소리를 내길 기다리는 듯했어요. 온몸이 아플 만큼 오래 긴장을 했나 봐요. 이렇게 이 밤이 가시지 않으면 어떡하지. 고요하게 멈춘 이 세상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싶었어요.
조심한 게 허무할 만큼 소리 내 울었어요. 모르겠어요, 왜 갑자기 눈물이 난 건지도 모르겠고, 꼭 장면을 스킵한 것처럼, 누군가 5초 앞으로 버튼을 누른 것처럼 갑자기 울었어요. 아니 울고 있었어요. 시간이 어떻게 그래, 싶을 만큼요.
누가 들었다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을 만큼, 사연 있는 사람처럼 서럽게 울었어요. 하지만 불을 켜지 않은 방 안은 여전히 어둠뿐이었고, 창밖엔 움직이지 않는 세상뿐이었어요. 제 울음소리를 들어줄 사람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어떻게 아침이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침대에서 일어난 걸 보면 울다 지쳐 잠든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날은 밝았고, 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하루를 시작했어요.
그런 밤이었어요. 시간의 틈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을 쏟아냈던 밤. 정신없이 돌아가던 화면 속 인물들이 잠시 정지 버튼을 누른 사이 쌓였던 슬픔을 토해내며 다시 플레이 버튼이 눌리-지 않-기를 기다리던 순간 같은 밤이요.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 많은 밤이요.

2017.09.01.31:37.
10cm - 일시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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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하루 끝을 생각합니다. 오늘도 슬픔이 남은 날이었어요. 기쁨은 쉽게 휘발되는데 슬픔은 낮게 가라앉아 쌓여 갑니다. 하지 못한 말과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 사이에서 미련과 후회만 남는 자신을 탓해 봅니다. 후회가 남지 않는 하루란 어쩌면 이리도 어려운 걸까요. 가능하긴 할까, 나만 이렇게 어려운가 싶기도 합니다. 하루는 그렇게 끝나도록 만들어진 걸지도 모릅니다. 채 풀어내지 못한 후회가 어깨를 누르고 쌓인 슬픔이 코끝까지 차면, 사람은 그렇게 숨이 막혀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풀벌레 부는 밤입니다. 저는 오늘도 당신에게 하지 못한 말들을 떠올리며 잠을 청합니다. 꿈에서 만난다면 그 말들을 할 수 있을까요. 아마 아니겠지요. 꿈에서도 저는 저일 테고 당신 역시 당신일 테니, 말은 여전히 그 사이를 메우지 못하고 어딘가로 흘러갈 겁니다. 그래도 그렇게 흘러간 말이 쌓이면, 두 사람의 틈을 메울 만큼, 흐르고 흐르다 떠올라 당신의 머리맡에 내리면, 어쩌면 그렇게 한 마디나마 닿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 약한 바람을 하며 잠이 듭니다. 꿈에서도 바라는 건 그런 나약한 소원뿐입니다. 좋은 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에겐 좋은 밤이길 바랍니다. 하루 끝의 슬픔이 모두 증발하고 날아갔던 기쁨이 다시 돌아오길 바랍니다. 부디 평안한 밤이면 좋겠습니다.

2017.09.02.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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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죽은 자리엔 어떤 꽃이 필까 상상해 봅니다. 신화나 전설이 아니어도 모든 죽음 뒤에 꽃이 남겨진다면, 제가 죽은 자리엔 어떤 꽃이 필까요. 아는 꽃이 많지 않아 몇 송이 떠올리지도 못하고, 어울리는 꽃 역시 찾지 못했습니다. 이따금 보도블록 사이에 홀로 핀 꽃을 보며 혹시 이곳에서 누군가 죽었던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코가 아찔하고 눈이 어지럽도록 꽃이 만발했던 그곳에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던 걸까, 무슨 일이 있던 걸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당신과 닮은 꽃을 가져오세요, 어느 전시회에서 메모지에 적힌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죽은 자리에 핀 꽃은 그 사람이 살아있었을 때를 닮았을까요, 아니면 전혀 상관없는 모습일까요. 같은 꽃으로 피어난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합니다. 살아서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녔든 죽은 자리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좁힐 수 없는 거리에 피게 된 꽃 두 송이를 생각합니다. 제가 죽은 자리에선 어떤 꽃이 필까요. 어디에 피어야 가장 아름다울까요. 아니, 조금이라도 덜 추할 수 있을까요. 어디로 숨어야 쉽게 꺾는 손과 무신경한 발을 피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얼마나 많은 죽음을 꺾거나 밟아 왔을까요. 당신 창가에 봄볕과 함께 그림자로 드리우는 꽃이 되는 상상을 해 봅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고 햇빛조차 잊어버린 채 피어난 꽃 한 송이를 그려 봅니다. 혹 당신이 먼저 떠난다면, 그 자리 어디든 찾아가 피어난 꽃 한 송이를 마냥 바라보다가, 시들고 떨어지는 꽃잎 한 장 한 장을 조심스레 두 손에 모아 끌어안은 채, 같은 자리에서 또 다른 꽃이 되어 피어나는 저를 떠올려봅니다. 꽃을 보다 꽃이 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2017.08.20.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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