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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엄마와 1000pcs 퍼즐을 맞춘 적이 있다(서쪽 숲). 1 2012.03.19



엄마와 1000pcs 퍼즐을 맞춘 적이 있다. 완성된 그림도 없고 비슷비슷한 조각이 많아 꽤 긴 시간이 필요했던 그 퍼즐에는, 숲이 그려져 있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숲의 전경엔 붉은 노을빛이 번지고 있었고, 나무들은 거대한 새로 변해 무리지어 날아가고 있었다. 엄마는 그곳이 서쪽 끝에 있는 숲이라 했다. 해가 뜰 무렵 옅은 안개 사이로 하나 둘 모여든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해질 무렵이 되면 노을빛을 받은 나무들이 새로 변해 지평선으로 날아가는 곳이라며, 엄마는 서쪽 숲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의 이야기는 퍼즐의 그림보다 생생하고 신비로웠다. 난 엄마가 그곳에 갔다 온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듣는 나보다 말하는 엄마가 더 이야기에 빠져있는 것 같았으니까. 언제 가보았냐는 내 질문에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너무 멀어서 갈 수 없었다고 했다. 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는 내 물음에 엄마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 미소가 고작 6살인 내게도 너무나 슬퍼보였기에, 난 커서 돈 많이 벌면 꼭 엄마와 함께 그곳에 가겠다 했고, 엄마는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는 병으로 돌아가셨다. 서쪽 숲은커녕 변변한 여행 한 번 해보지 못하시고 병원에서 눈을 감으셨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삼일 가까이 잠만 잤다. 꿈속에서 난 어릴 적 그날처럼 엄마와 퍼즐을 맞추었다. 한참을 맞추다 거의 완성할 때쯤, 난 조각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결국 남은 조각을 모두 맞추고도 퍼즐은 완성되지 못한 채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었다. 새의 날개가, 나뭇가지가, 노을빛이 채워지지 못한 채 빈 공간으로 남았다. 혹시 어딘가에 퍼즐 조각이 떨어져 있는 건 아닐까 찾는 내 등 뒤로, 멍하니 퍼즐을 바라보시던 엄마의 한마디가 들렸다. 끝내 가지 못했구나. 꿈은 거기서 끝났다.
엄마와 난 완성된 퍼즐을 방 한쪽에 옮기곤 몇 달이고 그대로 두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퍼즐을 보며 엄마가 해준 이야기와 내가 한 약속을 떠올리곤 했다. 그러니까 그 퍼즐은, 이를테면 나의 첫 번째 소망과 같은 것이었다.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땐 퍼즐을 허무는 게 슬퍼 울음을 터트릴 정도였다. 엄마는 이사 가자마자 퍼즐부터 맞추자며 우는 날 달랬다. 간신히 눈물을 멈춘 나와 엄마는, 퍼즐을 맞췄을 때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조각을 하나씩 상자에 담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허물어야만 한다는 기억이 너무 강하게 남아서인지, 이사한 뒤엔 한 번도 퍼즐을 꺼내 맞추지 않았다.
눈을 뜨자마자 짐을 뒤져 퍼즐 상자를 찾았다. 20여년 만에 다시, 홀로 퍼즐을 맞췄다. 꿈의 잔상이 남아서인지 아니면 그만큼 필사적으로 맞춰서인지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허나 퍼즐은 완성할 수 없었다. 조각이 부족했다. 꿈에서처럼 새의 날개가, 나뭇가지가, 노을빛이 빈 공간으로 남았다. 장례식 내내 난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엄마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고 왠지 나만은 울어선 안 될 것 같아서였다. 끝내 가지 못했구나. 엄마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엄마와 난 한 번도 퍼즐을 완성한 적이 없었다. 엄마가 어디선가 퍼즐을 가져왔을 때부터 조각은 부족했다. 완성할 수 없는 퍼즐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일주일이 지났다. 퍼즐을 허물던 날처럼 난 서럽게 울었다. 달래주는 사람이 없어 오래도록 울 수 있었다.

2012.03.18.24:15.
이적 서쪽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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