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치 커피를 마시고 그만큼의 잠을 접어 둔다. 며칠이 되지 않아 잠은 한 권의 책이 된다. 책이 된 잠을 책장에 꽂는다. 커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책장에 꽂힌 잠은 조금도 허투루 사라지지 않고 남아 나를 기다린다. 틈틈이 쌓인 잠을 한 권씩 꺼내어 풀어 보낸다. 허나 책은 사라지는 것보다 빠르게 늘어만 간다. 몇 달의 한 번, 제 몸이 버거워진 책장은 내게 책을 토해내며 쓰러진다. 그 아래 깔린 난 어떻게도 일어날 수가 없다. 책이 되었던 잠은 다시 반투명한 관이 된다. 난 그저 쌓인 잠이 흘러가길 기다리며 바닥에 낮게 엎드려 있을 뿐이다.
간신히 빈 책장을 치우고 일어나면 사라진 잠만큼 낯선 시간이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뺨을 때리고 발목을 잡아끌며, 때론 소매 끝에 매달려 나를 불편하게 한다. 시간은 언제나 남이었다. 낯설게 다가와 냉정하게 지나간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추억하는 건 나뿐이다. 늘 곁을 스쳐가면서도 나와는 무관하게 흘러간다. 타인은 지옥이라고 사르트르가 말했다. 내겐 시간이 그렇다.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매정할 순 없다. 하루만큼 죽어간다. 커피를 마시거나 잠을 자도 죽음을 피해갈 순 없다. 어쩔 수 없이 쌓인 잠을 비워내야 하는 것처럼 매순간 죽음은 내게 다가온다. 아니 죽음을 향해 내가 떨어져 간다. 어쩌면 계속해서 쌓이는 잠의 본질이 죽음인지도 모른다. 접히고 책이 되어 책장을 메우고 하나의 벽을 가리면서 잠은 점점 더 뚜렷한 죽음이 된다. 반투명했던 관이 선명해진다. 나를 덮치는 것은 결국 죽음,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다가가고 있는 그것이다. 오늘도 방 깊은 곳에 새로운 책을 한 권 꽂는다.

2014.11.08.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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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잊을 만도 한데, 이맘때만 되면 여자는 어김없이 이 문장을 떠올렸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특별히 떠오르는 일도 없다. 어느 날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여자를 사로잡으며 그녀를 사람들로부터 격리시켰다.
사람들은 그녀가 어렵다 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가까이 하기 힘든 사람이라 했다. 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그녀는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어려웠다. 어쩌면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가까워질수록 여자는 무서웠다. 저 사람은 아직 나를 모른다. 조금 더 가까워지면, 보다 나를 잘 알게 되면 틀림없이 멀어질 것이다. 버림받을 것이 분명하다. 비슷한 일을 겪은 기억이 없음에도, 자신의 생각이 막연한 공포라는 걸 알면서도 여자는 걱정을 떨쳐낼 수 없었다.
버림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여자를 매사에 초조하게 했다. 조금이라도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여자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거나 빚을 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을 혹사시키면서라도 어떻게든 맡은 일에서,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려 애썼다. 능력은 모든 것을 긍정한다 했다.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랑 받을 수 없다면 일에서라도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과 몸 중 어느 쪽이 먼저 망가지기 시작한 건지 모르겠다. 무리하는 일이 이어지면서 여자는 수시로 앓아눕곤 했다. 몸이 아픈 것보다 누구에게 아픈 티 한 번 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그녀를 힘들게 했다. 그럴 때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그녀의 외로움은 짙어만 갔다.
결국 사람들과 먼저 멀어진 것은 여자였다. 누구를 만나고 어디에 있어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기에, 늘 버림받기 전에 천천히 멀어지는 쪽을 택했다. 몇 번의 만남을 거절하고, 한동안 연락을 끊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두 번의 계절, 가까워지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든, 멀어지는 데는 늘 그 정도만 필요했다. 그렇게 여자는 시간을 거리로 두기 시작했다. 나아지는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안 좋아지는 것 또한 없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또 한 번의 이별을 앞두고, 여자는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을 읊조려본다.

2013.10.03.26:22.
이소라 T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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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널 알아갈수록 내 의문은 깊어진다. 넌 진정 날 사랑하는 걸까.
고백을 앞두고 내가 두려웠던 건 거절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승낙. 차마 거절하는 것이 미안해 알겠다고 할까봐, 단지 그 이유로 날 만나고, 후에 네가 날 떠올렸을 때 느끼는 감정이 오직 미안함뿐일까봐 난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누군가 모든 고백은 이기적이라 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네가 내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치졸한 이기심에 난 네게 고백했다. 그렇게 너와 내가 만나게 되었다.
내가 사랑한다 말할 때면 너 역시 사랑한다 했다. 한 번도 네가 먼저 사랑을 말한 적은 없었다. 다툼은 언제나 너의 사과로 끝이 났다. 나의 작은 투정에도 넌 늘 미안하다고 했기에 다툼이라 조차 할 수 없는 일뿐이었다.
한 번은 내 스스로 분에 못 이겨 넌 왜 늘 미안하다는 말뿐이냐고,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왜 이렇게 사람이 착하기만 하냐고, 날 사랑해서 만나긴 하는 거냐고 쏘아댔다. 난 네가 화를 내거나, 아니면 최소한 내가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며 지친 기색이라도 보여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넌 모든 것이 미안하다며 사랑한다고, 날 사랑한다고 말했다. 결국 넌 또 미안할 뿐이었다. 내가 원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렵게 털어놓은 내 얘기에 친구들은 그렇게 미련할 정도로 착한 사람이 어디 있냐고 했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넌 미련하다는 소리를 듣고도 남을 만큼 착한 사람이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너의 진심을 의심하는 내가 밉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지울 수가 없다.
헤어지자는 말을 앞두고 난, 네가 차마 거절하는 것이 미안해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할까봐, 시작이 그랬듯 마지막까지 너에게 그저 미안함뿐인 사람으로 남을까봐 두렵다.

2013.03.27.28:42.
Birdy Skinn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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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6.24:18.

2012. 10. 17. 00:18 /2012-

집에 도착하자마자 TV부터 켠다. 딱히 보는 프로가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움직이는 소리만 들리는 상황이 싫어서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입었던 옷을 세탁기에 넣는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화장실에서 나온다. 어제 먹던 찌개를 데우고 냉장고에서 반찬 두세 가지를 꺼내 상을 차린다. TV 채널을 몇 번 돌리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멈춘다. 몇 번은 본 회차라 이젠 웃음도 나지 않지만 상관없다. 평소대로 푸면 어설프게 남을 것 같아 밥솥에 있던 밥을 모조리 긁어 담았더니 그릇을 비우기가 영 버겁다. 일 분에도 몇 번씩 쓰러질 듯 웃는 TV 속 사람들을 표정 없이 바라보며 남은 밥을 꾸역꾸역 넘긴다. 상을 치우고 설거지까지 끝낸 뒤 잠시 밥을 안칠까 고민한다. 내일은 집에 몇 시쯤 들어올 수 있을까. 내일모레는,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 화요일 밤은 밥을 하기엔 애매하다. 야근이 이어지면 주말에나 먹을 수 있어 새로 밥을 하자니 망설여지고, 비워두자니 허전하다. 결국 일찍 끝나더라도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 편이 집에서 쉰밥을 먹는 것보단 낫겠다 싶다. 컴퓨터를 켜려다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시간만 죽일 것 같아 그만둔다. 침대에 잠시 누웠다 며칠 전 지하철역에서 산 영화 잡지를 꺼내 편다. 계약서라도 살피듯 꼼꼼히 기사를 읽다 눈에 띄는 개봉작 몇 작품을 발견한다. 지난주에 나온 잡지니 이미 상영 중일 텐데, 주말엔 오랜만에 극장이나 갈까. 아니면 금요일에 심야로 볼까. 한때 영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작가가 뭐냐, 사내자식이. 이왕 할 거면 감독은 해야지. 대체 사내자식과 영화감독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두 번 다시 아버지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걸 당신은 모르신다. 결국 난 내가 원하던 작가도,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감독도 되지 못한 채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어느 쪽이 더 치열하고 간절했을까 싶을 만큼 겨우 얻어낸 평범함이었다. 매일 갱신하지 않으면 박탈되는 자격증 같은 평범함. 철봉 게임 같았다. 정해진 시간만큼 철봉에 매달려 있지 못하면 바닥이 꺼져 떨어지는 벌칙을 받는 게임. 새로운 목표는 매일 아침마다 어김없이 할당되고 게임은 계속된다. 누군가는 이런 내 모습을 예능 프로 보듯 보며 웃고 있지 않을까. 맥없이 쓰러지는 나를 보며 일 분에도 몇 번씩 쓰러질 듯이. 매달려 있어야 할 시간이 늘어나며 자연스레 극장에 가긴커녕 컴퓨터나 TV로 영화를 보는 횟수마저 뜸해졌다. 그마저 익숙해지며 이젠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긴 했나 싶다. 잡지를 덮고 멍하니 천장을 보다 뭔가 생각난 듯 컴퓨터를 켠다. 블로그에 비공개로 올렸던 예전 글들을 넘겨보다 멈춰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수정 버튼을 누르고 열심히 키보드를 치다 방금 쓴 내용을 다시 읽어보곤 모두 지운다. 다시 몇 자 적다가 이내 그 내용마저 지우고는 다시 저장 버튼을 누른다. 나아지는 건 없지만 그렇다고 지우기엔 미련이 남아 남겨둔 글들이 블로그에 먼지처럼 쌓였다. 손가락도 아닌 손바닥으로 굴려 뭉치면 밥그릇 하나는 채울 수 있을 만큼 수북이. 다시 다른 글을 읽다 수정 버튼을 눌러 고치나 마나 한 문장 몇 개를 고치고 저장한 뒤 컴퓨터를 끈다. 그러고도 한참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쉰내 나는 밥이 된 기분이다. 물기 없는 밥풀은 잘 붙지도 않는데, 그래서 갈수록 매달리는 일도 힘들어지는 걸까. 문득 시계를 보고 일어나 방에 불을 끈 뒤 침대에 눕는다. 바뀌었을 리 없는 휴대전화 알람을 확인하고 눈을 감는 지금, 가장 두려운 건 내일도 오늘과 다를 바 없을 거라는 확신이다.

Mot 서울은 흐림 (Feat.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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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는 어김없이 감기와 함께 왔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남자는 봄과 가을만 되면 감기를 앓았다. 신기할 정도로 평일엔 괜찮았다. 머리가 지끈거리거나 콧물이 흐르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눈치챌 만큼 티가 나진 않았다. 그러다가 꼭 휴일만 되면 흔들었던 탄산음료의 뚜껑을 열듯 감기 기운이 폭발했다. 별로 심각하단 생각 없이 잠이 들었다가도 아침이면 몸살 기운에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웠다. 씻기는커녕 종일 밥조차 먹지 못하고 꼼짝없이 누워 하루 이틀을 보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자신이 아픈 걸 누군가 알아주길 바랐다. 휴일이 아니라면 직장 동료에게 빈말이라도 어디 아파요? 한마디 들을 수 있을 텐데.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프단 얘길 먼저 하거나 SNS에 글을 올리는 것도 괜스레 민망해 남자는 혼자 끙끙대며 감기와 싸워야 했다. 종일 앓다가 겨우 정신을 차릴 때면 남자는 감기 기운이 아닌 외로움에 더 힘들곤 했다. 아플 때 가장 먼저 연락해 아프다고 징징댈 수 있는 사람. 걱정할까 봐 아프다는 말은 못 하고 쓸데없는 말만 돌려하다가 감기 조심해, 한 마디 하고 전화를 끊을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니 그저 더는 혼자 아픈 일이 없었으면.
남자는 또 한 번 홀로 감기를 앓고 있다. 가을이다.

2012.09.19.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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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추위에 몸을 떨다 눈을 떴다. 실내엔 아무런 조명도 없었다. 형광등이 천장에 줄지어 매달려있었지만 어느 하나 불이 켜져있지 않았다. 왼편 창으로 담 너머에 세워진 가로등과 도로를 지나는 차의 불빛이 비춰 남자는 간신히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높은 천장과 고스란히 드러난 철골, 세 줄로 길게 매달린 형광등, 투박하게 늘어선 전선과 장판 없이 페인트만 대충 칠해진 바닥, 조립식 벽으로 막힌 오른쪽 벽과 예닐곱 명은 동시에 오갈 수 있을 듯 넓은 문, 학교 교실 세 개는 합쳐놓은 듯 넓은 공간이었다. 아, 공장이구나. 그제야 남자는 자신이 있는 곳을 깨달았다.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내놓으라할만큼 유명한 브랜드의 기타 공장이었다. 두 달 가량 아르바이트를 해 기타를 장만한 스무 살 청년이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첫 번째 기타를 자랑하며 락은 저항이라고 큰 소리 칠 때, 남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일해야 했다. 공장의 창문은 모두 막혀있었다. 높으신 누군가가 일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알 수 없도록 바깥을 보지 못하게 모든 창을 막아버렸다. 몇 시간에 한 번, 담배라도 한 개비 피우기 위해 밖에 나가야만 하늘이 밝고 어두움을 알 수 있었다.
공장의 소음 속에서 기타가 만들어졌다. 기타를 만드는 곳이었지만 정작 일하는 사람들은 소음 때문에 귀마개를 해야 했다. 남자는 그때 공장이 내는 소리를 울음이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사라진 지금, 남자는 알았다. 그때 공장은 그저 자신의 소리를 내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귀를 막아야할 만큼 시끄러웠지만 그때의 소리엔 힘이 있었다. 속을 들어내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자 공장은 정말 울기 시작했다. 창이 막혔는데 밤은 어찌 아는 지, 공장은 밤마다 자신의 남은 뼈 속에서 바람을 굴리며 울었다. 공장의 진짜 울음소리를 들으며, 내쫓기고 죽어가는 것은 사람만이 아님을 남자는 깨달았다.
해고는 빠르게 이뤄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깨닫기도 전에 남자를 비롯한 모두가 해고 통보를 받았고, 공장은 하루 아침에 가동이 중단되었다. 며칠만에 생산장비는 모두 차에 실려 어딘가로 떠났고 공장은 텅 빈 속을 드러내야했다.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던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본사 앞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에서,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공장에서. 이들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며 목소리는 점점 커졌지만 정작 이 소리를 들어야했던 사장은 귀를 막은 듯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아무것도 몰랐다. 누군가는 사장을 욕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남자를 비롯해 시위를 하는 해고 노동자들을 욕했다. 남자는 누가 옳은 것인지, 사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면 저 사람들은 왜 우리를 욕하는 건지, 혹시 자신이 정말 욕먹을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을 비롯해 이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왜 잘려야 했는지, 이 공장이 왜 문을 닫아야하는지 역시 알 수 없었기에, 누구도 납득할만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기에 남자는 이곳에 남았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여전히 남자는 밤에 눈을 뜰 때면 이곳이 낯설었다. 텅 비어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 하는 공장이, 이곳에서 잠이 들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자신이, 이제 곧 6년이 되어 가는데 그 긴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이 지리멸렬한 상황이 너무 낯설고 무서웠다. 팽팽하던 기타 줄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 할 정도로 느슨하게 풀어졌다. 이대로 두 번 다시 악기가 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남자는, 공장은 두렵다.

2012.07.21.05:15.
Radiohead Exit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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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다. 요 며칠 해만 지면 햇볕에 달아오른 땅을 급하게 식히려는 듯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밤새 태풍이 몰아치다 다시 해가 뜰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은 사라지고 더위만 가득했다. 해가 떴을 때와 그렇지 않은 시간이 서로 다른 계절인 듯 나뉘었다. 한 시간 남짓 매일 밤 습관처럼 걷는 길. 옆에 선 너는 아무 말이 없다. 그저 서로의 발을 맞추며 걷는다. 하루의 마지막. 긴 하루일수록 더 행복한, 온전히 너와 내가 함께 하는 시간. 난 언제부턴가 매일 이 시간만을 기다렸다.
전철은 언제나 집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끊겼다. 택시를 타기에는 아까운, 하지만 지친 하루 끝에 걷기엔 부담스러운 거리다. 그럴 때마다 넌 역에서 날 기다렸다. 난 피곤함도 잊은 채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네게 떠들어댔고, 넌 내 얘기에 맞장구쳐주며 가끔은 네게 있었던 재밌는 일들을 이야기해주며 나를 바래다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길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길이라는 말이 그렇게 실감 날 수 없었다. 힘든 날일 수록 오히려 이 길이 조금 더 길어지길, 너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이어지길 바랐다. 길을 걸으며 대화를 하는 것이 어딘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더 집중하게 만든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내 발걸음은 조금씩 느려진다. 이별을 앞둔 모든 연인들이 그렇듯 나 역시 너와의 헤어짐이 아쉬운 까닭이지만, 넌 내가 지쳤다고 생각했는지 내 발에 맞춰 걷는다. 너의 몸에 베인 크고 작은 배려들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네가 알았으면 좋겠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만 가끔 집까지 갈 수 있는 막차를 일부러 타지 않았음을, 너와의 걸음으로 오늘 하루를 끝낼 수 있기를 바랐던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 또한 네가 알았으면 좋겠다. 그날의 일을 내가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익숙해져선 안 되는 것에 익숙해진 미련한 내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매일 밤 지독히도 미안해하고 있음을 네가 알았으면 좋겠다.
집이 가까워지고 내 발걸음은 또 한 번 느려진다. 네가 없이 너를 떠올리며 걷는 길.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다독일 수밖에 없는 나와, 집에 돌아가면 또다시 찾아올 오지 않는 잠에 뒤척일 깊은 밤과, 아직까지도 내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못난 내 모습에 지친다. 생각해보면 넌 내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을 빼면, 단 한 번도.

2012.06.26.23:24.
이지수 Blue 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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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새벽부터 바닷가에 나와 있다. 남자는 멀찍이 서서 여자를 바라본다. 남자가 마을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간혹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바닷가에 나와 보면 늘 같은 자리에 그녀가 서 있었다. 여자는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만 보았다. 해가 지면 집에 돌아갔고, 다시 날이 밝으면 어김없이 바다로 나왔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벌써 몇 달째라 했다. 마을에 딱 하나뿐인 구멍가게에도 들리지 않고, 우편으로 무언가가 오는 것도 아닌데, 밥은 제대로 챙겨 먹는 건지 모르겠다며 여관 주인아주머니는 말씀하셨다. 왜 저러고 있는 거냐는 물음에 낸들 아냐고 답하셨지만, 이내 죽은 자식 때문이라며 말을 이으셨다.
아주머니의 말씀대로라면 여자는 작년 이맘때쯤 혼자 마을에 왔다. 한껏 배가 부른 몸으로, 짐이 가득한 가방 하나를 끌고 이사를 왔다고 한다. 여자는 일을 구하지 않았고 사람들과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본 여자의 모습은 이따금 가게에 들러 얼마 되지 않는 먹을거리를 사 가거나, 해가 질 때쯤 혼자 바닷가를 걷는 것이 전부였다. 사람들은 여자가 임신한 몸인 데다 아직 마을에 적응하지 못해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사 온 지 두 달이 되지 않아 여자는 아이를 낳았고, 다시 채 두 달이 가기 전에 아이는 그녀의 곁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아이를 낳을 때도, 죽은 아이를 바다에 뿌릴 때도 여자는 혼자였다. 아이를 낳은 뒤엔 외출조차 하지 않았고, 아이가 죽은 뒤엔 지금처럼 바다만 볼 뿐이었다. 심지어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도 옆집 사람이 아기 울음소리를 들어서 알았다. 아이가 죽은 것 역시 여자가 바닷가에 재를 뿌리는 모습을 누군가 우연히 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여자가 제대로 생활은 하고 있는 건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여자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고 있었다. 기척이라도 했으면 도와줬을 텐데, 사람이 왜 그렇게 야박한지 모르겠다며 아주머니는 혀를 차셨다. 애비가 누군지 참 몹쓸 놈이라고, 지 자식이 태어났다 죽은 걸 알기나 하는지, 하긴 그걸 안다면 저년이 저러고만 있지는 않을 거라고 하셨다.
남자는 오늘따라 무슨 바람이 분 건지 바닷가 입구까지 나가 여자를 바라보고 섰다. 오가며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여자만 보며 오래 서 있는 건 처음이었다. 여자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바다만 보았고, 남자는 그런 그녀를 보고 있었다. 지나가던 마을 어르신은 남자에게 그렇게 서 있는 건 저년 하나로 충분하니 괜히 이상한 거 따라 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해가 지며 바다 위에 붉고 긴 선을 긋자 여자는 그제야 몸을 돌렸다. 발치만 보며 걷던 여자는 마을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남자를 발견했다. 일 년 반 만에 만남이었다.

2012.05.28.29:00.
Clazziquai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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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만 나누어 줄 수 없나요. 사람은 모두가 죽지만 누구도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요. 당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 수 있다면 보다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조금은 더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전 제게 남은 시간을 알고 있어요. 누군가는 이런 저를 축복받은 삶이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저주받은 인생이라 했죠. 당신이 보기엔 어떤가요.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줄어드는 걸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기분이 어떤 건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그건 축복도 저주도 아니에요. 현실의 무게 앞에 축복과 저주는 뜬 구름처럼 가볍고 무의미한 것일 뿐이죠. 죽을 수밖에 없는 병에 걸린 사람들은 죽음을 본다고 하잖아요. 하루가 다르게 다가오는 죽음이 보이기에 그들의 눈빛 속에서도 죽음이 느껴지는 건가 봐요. 전 그것이 죽음인지 몰랐어요. 제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에 그것이 있었으니까요. 덧셈뺄셈을 배우고 가장 먼저 한 건 제가 몇 살에 죽을지를 계산한 것이었어요. 몇 시간이 걸렸어요. 계산을 하면서도 줄어드는 시간이 무서워 손을 떨어야 했어요. 곱셈과 나눗셈을 배우고 나니 채 일 분이 걸리지 않더군요. 너무나 쉽게 제게 남은 시간을 계산할 수 있었어요.
잠들 때면 깨어났을 때 줄어있을 시간을 생각하며 눈물 흐리고, 눈을 뜨면 성큼 다가온 죽음이 무서워 몸부림쳤던 저를, 당신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어쩌면 당신은 제게 죽음이 보인다면서 왜 그런 일로 헛되이 시간을 보내느냐고 말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순수한 공포와 불안 앞에서 사람은, 아니 적어도 전 그렇게 이성적일 수 없어요. 그건 엄마를 찾는 갓난아기에게 곱셈과 나눗셈을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잔인한 일이에요. 숫자가 작아지고 결국엔 자릿수가 줄어드는 끔찍함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년에서 달이 되고, 결국엔 날이, 시간이 되어 목을 조여 오는 잔혹함을 누가 알 수 있을까요. 바로 옆자리에 앉아 날 바라보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당신은 상상이나 할 수 있나요. 외면하려 할수록 더 가까워지는 죽음을, 옆에 앉아 당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죽음의 눈빛을.
누군가의 현실은 당신이 상상했던 어떤 것보다 잔인해요. 수도 없이 떠올려 왔던 죽음이지만, 이렇게 손에 닿을 듯 가까워지니 그동안 생각했던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지네요. 경험하지 않은 것은 익숙해질 수도 없나 봐요. 늘 함께 했던 것이라 생각했는데 낯설기만 하네요. 오늘이 지나면 이것도 끝이겠죠. 안녕, 그리고 안녕. 마주보게 된 죽음과 언젠가 그 옆에 앉게 될 모든 이들에게.

2012.05.19.29:04.
Casker W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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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을 넘게 기르던 고양이가 죽어 묻어준 다음 날, 잠에서 깬 남자는 무언가 사라졌다는 걸 느꼈다. 그날부터 보름이 넘도록 왠지 모르게 피곤하고, 이상할 정도로 몸의 기운이 없는 날이 계속되었다. 처음엔 고양이를 잃은 상실감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증상이 심각해지자 남자는 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신장이 하나 없으시네요, 수술 언제 하셨어요. 남자는 신장은커녕 맹장 수술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의 몸에 수술 흔적이 없는 걸 확인한 의사는 결과가 잘못 나온 것 같다며 남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검사를 했다. 결과는 같았다. 남자의 몸에는 신장이 하나뿐이었다. 올해 초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만 해도 남자의 몸에는 이상이 없었다. 채 일 년도 안 되는 사이에 신장 하나가 사라졌다. 남자는 물론 의사조차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외엔 어떤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랄지 남자의 하나 남은 신장은 건강했다. 의사는 만약 지금 그가 겪는 증상이 사라진 신장 때문이라면, 몸은 오래지 않아 거기 적응할 것이고 건강도 회복될 것이라 말했다. 의사의 말을 믿을 수 없던 남자는 이튿날 다른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그가 알게 된 건, 어제 본 의사가 참 차분한 사람이었구나, 라는 사실뿐이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며 남자는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 그는 고양이가 죽은 날 자신의 신장 하나도 사라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추론이었다. 몸에 이상이 나타났던 날을 떠올려보면, 그날은 아니더라도 그쯤 언젠가가 분명했다. 꿈같은 얘기지만 현실이었다. 남자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고민했지만, 의사의 말대로 그의 몸은 점차 하나뿐인 신장에 적응했고 이내 아무 일 없던 듯 건강을 되찾았다. 대부분의 고민이 그렇듯 사라진 신장에 대한 생각 역시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 희석되어 사라졌다. 그럼에도 가끔, 남자는 왼쪽 허리 언저리를 만지며 고양이를 떠올리곤 했다.

2012.05.13.27:56.
Savina & Drones 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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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빌라 한 동이 사라졌다. 새벽에 우유를 배달하던 대학생은 사라진 건물을 찾아 동네 한 바퀴를 더 돌아야했다. 주변엔 이미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뿐이었다. 몇 해 전 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혹은 누군가에게 떠밀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주변을 통틀어 빌라에 사는 세 가구 여섯 명만이 남아있었다. 대학생은 결국 우유 두개를 배달하지 못 했다. 우유를 남겨갔다가 어느 때보다 혼이 난 경험이 있던 대학생은, 배달하지 못 한 우유 두 개를 마신 뒤 빈 팩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정오가 되어서야 집배원을 통해 빌라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소식은 인터넷에 먼저 퍼졌다. 누군가는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고 말했고, 북한이 미사일을 쏘았다, 정부에서 비밀리에 실험을 했다, 밤새 굉음을 들은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소문은 관심을 먹고 자라났다. 방송국이 차례로 빌라 실종사건을 보도했고, 내로라하는 대학교수와 전문가들이 의견을 내놓았지만 결론은 하나같이 조사를 해봐야 알 것 같다, 였다. 추가보도가 계속되었지만 떠도는 소문을 정리한 하나마나한 얘기의 반복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사라진 빌라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으며, 재개발로 피해를 보게 된 누군가가 허위 사실을 퍼트린 거라는 주장이 새롭게 떠올랐다. 뒤이어 답을 찾지 못하던 언론과 전문가들이 사건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였고, 사람들은 빌라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역 사람들의 증언은 물론 빌라의 모습이 담긴 예전 사진과 영상이 의심을 받았고, 처음부터 그런 건물은 없었다, 이미 오래 전에 허물어 사라진 건물이다, 등의 주장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결국 사건은 진위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공허한 논쟁이 되풀이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에 피라미드나 에펠탑을 지운 사진과 함께 밤새 무엇이 사라졌어요, 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빌라가 우주선처럼 발사되거나, 바퀴나 발을 달고 이동하는 등의 합성 사진이 경쟁적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하루 동안 사람들 입에서 바쁘게 오르내리던 빌라 실종사건은, 이튿날 터진 어느 연예인의 열애설에 묻혀 사라졌다. 인터넷엔 연예인의 예전 사진과 인터뷰 자료를 통해 찾은 열애설의 증거가 속속 올라왔고, 기사와 방송에는 연예인의 지인과 측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이후 지하철 난동 사건과 성폭행, 또 다른 연예인의 이혼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인터넷과 각종 언론을 뒤덮었다. 빌라 실종 사건은 처음부터 없던 일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졌다. 모든 것을 기억하기엔 사건이 너무 많았고, 유명인의 스캔들이나 이혼, 지하철에서 난동을 부린 누군가의 영상에 비해 빌라 실종 사건은 현실적이지도, 그렇다고 자극적이지도 않았다. 새로운 소문은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졌고, 전문가와 교수들은 해야 할 일과 말이 너무나 많아 무언가를 조사할 시간이 없었다. 두 달이 채 가기 전에 빌라가 있던 곳엔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반년이 지난 뒤엔 사라진 빌라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건물이 그 자리에 세워졌다. 앞 다투어 이사 온 이들 중 누구도 그 곳에서 한 동의 빌라가 사라졌음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은 충분한 돈을 지불했기에 그런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아무도 사라진 빌라에 살던 여섯 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2012.05.02.23:05.
Radiohead Karma Pol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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