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만 나누어 줄 수 없나요. 사람은 모두가 죽지만 누구도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요. 당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 수 있다면 보다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조금은 더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전 제게 남은 시간을 알고 있어요. 누군가는 이런 저를 축복받은 삶이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저주받은 인생이라 했죠. 당신이 보기엔 어떤가요.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줄어드는 걸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기분이 어떤 건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그건 축복도 저주도 아니에요. 현실의 무게 앞에 축복과 저주는 뜬 구름처럼 가볍고 무의미한 것일 뿐이죠. 죽을 수밖에 없는 병에 걸린 사람들은 죽음을 본다고 하잖아요. 하루가 다르게 다가오는 죽음이 보이기에 그들의 눈빛 속에서도 죽음이 느껴지는 건가 봐요. 전 그것이 죽음인지 몰랐어요. 제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에 그것이 있었으니까요. 덧셈뺄셈을 배우고 가장 먼저 한 건 제가 몇 살에 죽을지를 계산한 것이었어요. 몇 시간이 걸렸어요. 계산을 하면서도 줄어드는 시간이 무서워 손을 떨어야 했어요. 곱셈과 나눗셈을 배우고 나니 채 일 분이 걸리지 않더군요. 너무나 쉽게 제게 남은 시간을 계산할 수 있었어요.
잠들 때면 깨어났을 때 줄어있을 시간을 생각하며 눈물 흐리고, 눈을 뜨면 성큼 다가온 죽음이 무서워 몸부림쳤던 저를, 당신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어쩌면 당신은 제게 죽음이 보인다면서 왜 그런 일로 헛되이 시간을 보내느냐고 말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순수한 공포와 불안 앞에서 사람은, 아니 적어도 전 그렇게 이성적일 수 없어요. 그건 엄마를 찾는 갓난아기에게 곱셈과 나눗셈을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잔인한 일이에요. 숫자가 작아지고 결국엔 자릿수가 줄어드는 끔찍함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년에서 달이 되고, 결국엔 날이, 시간이 되어 목을 조여 오는 잔혹함을 누가 알 수 있을까요. 바로 옆자리에 앉아 날 바라보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당신은 상상이나 할 수 있나요. 외면하려 할수록 더 가까워지는 죽음을, 옆에 앉아 당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죽음의 눈빛을.
누군가의 현실은 당신이 상상했던 어떤 것보다 잔인해요. 수도 없이 떠올려 왔던 죽음이지만, 이렇게 손에 닿을 듯 가까워지니 그동안 생각했던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지네요. 경험하지 않은 것은 익숙해질 수도 없나 봐요. 늘 함께 했던 것이라 생각했는데 낯설기만 하네요. 오늘이 지나면 이것도 끝이겠죠. 안녕, 그리고 안녕. 마주보게 된 죽음과 언젠가 그 옆에 앉게 될 모든 이들에게.

2012.05.19.29:04.
Casker W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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