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 : 일상적 글쓰기'에 해당되는 글 17건

  1. #1084 괜찮아 2018.05.05
  2. #1690 이방인 2018.05.03
  3. #1595 그랬으면 2018.05.01
  4. #1689 해답 2018.04.29
  5. #1715 깊은 밤 2018.04.27
  6. #1540 쓸데없는 2018.04.25
  7. #1707 낡은 책 2018.04.21
  8. #1702 일기장 2018.04.19
  9. #1663 온도계 2018.04.11
  10. #1570 전염 2018.04.09
  11. #1604 담요 2018.04.07
  12. #1623 망설이다 2018.04.05
  13. #1666 오늘도 2018.04.05
  14. #1580 흔한 2018.04.03
  15. #1665 실례합니다 2018.04.03
  16. #1597 도로 2018.04.02
  17. #1569 세탁기 2018.04.02

괜찮아. 아직 떠난 사람을 잊지 못했다는 내게 넌 말했다. 뭐가 어떻게 괜찮을 수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떨리는 두 손을 꽉 쥔 채 겨우 울음을 참고 있는 네게 그럴 순 없었다. 그런 널 보면서도 그 사람이 본 내 마지막 모습이 이랬을까, 괜찮다고 말하는 날 보며 그 사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때의 난 스스로를 달래기 급급했다. 괜찮다는 말을, 내가 했던 그 말을 믿고 싶었다.
네가 없고 지금의 나도 없는 만남이었다. 그날 내가 안고 토닥인 게 울먹이는 네가 아닌 예전의 나였듯, 나는 그 사람이 되어 네게 겹쳐 보이는 예전의 나를 만났다. 대화를 나누고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 갈수록 상대는 내게 마음이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던 날들. 넌 그때의 나처럼 수시로 눈치를 살피고, 미안해하고, 갑자기 말이 많아지고, 종종 입술을 깨물며 애써 감정을 추스르곤 했다.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빠짐없이 내가 했던 행동들이었다. 그럴수록 난 더 밝고 애정 어린 사람이 되어 너를 대했다. 모르겠다. 이미 나를 잘 알던 너기에 그런 날 보며 더 힘들진 않았을지. 노력할수록 감춰지기는커녕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게 진심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난 입장을 바꿔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렇다고 간혹 멍해지고,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못내 티냈던 그 사람을 다 떨쳐낸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난 누구도 위로하지 못했고, 넌 예전의 내가 느꼈을 아픔까지 더해 더 많이 울었을 거다. 괜찮지 않은, 괜찮을 리 없는 관계였다.
생각해 보면 순전히 네가 견뎌냈기에 가능한 나날이었다. 나라면 이미 지쳐서 포기했을 텐데, 다른 감정이 더 커져서 좋아한다는 마음조차 가려버렸을 텐데, 넌 끝내 날 놓지 않았다. 하루 한 방울씩 떨어진 빗물이 끝내 수영장의 물을 새롭게 채우듯, 그렇게 넌 날 채웠다.
숨을 몰아쉬며 카페로 뛰어 들어와 내 앞에 앉은 너는, 나오려는데 상사가 갑자기 일을 맡겨서 늦었다고, 미안하다 했다. 조금 전에 메시지로 다 한 말을. 언제나 잘못도 아닌 일을 몇 번씩이나 사과하던 너다. 벌써 반년이 지났지만 난 네 손 한 번 작은 적이 없다. 나보다 몇 배는 조심스러웠을 너 역시. 나란히 걷다 어깨라도 스치면 흠칫 놀라던 너다. 말로 하진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내게 미안했다는 걸 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직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널 보며, 떨리는 네 손을 잡고 말한다. 괜찮아.

2018.02.26.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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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나라의 영화를 봤어요.
발음을 받아 적을 수도 없는 말들이 무해하게 흘러가요.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시선을 내리는 건
혹시 자막이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해서예요.

받아 적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꼭꼭 씹으며
익숙한 웃음을 지어요.
사람들은 절 잘 웃는 사람이라 했어요.
웃음만큼 무해한 반응은 없으니까요.

결핍은 시간이 지나도 새로운 발자국을 남겨요.
당연한 기억이 없어 추억은 저를 걸러내요.
영사기 앞에 선 기분이에요.
거대한 그림자가 발목을 잡고 있어요.

스크린도 아닌데 저는 왜 여기 서 있을까요.
배우가 되기엔 서툴고
관객이 되기엔 가난해서야.
한 줄의 자막이 새겨집니다.

아 그렇구나,
낯선 땅에서 모국어를 들은 사람처럼 웃어요.

2018.03.27.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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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는 말 대신 미안하다고 썼다. 외워지지 않는 외국어를 반복해 적는 학생처럼 마음 가득 빼곡히.
나는 늘 좋아해서 미안한 사람이었다. 처음 고백했던 날 알았다. 원치 않는 애정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되는지. 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그 뒤로 지금까지 난 어김없이 가해자의 편이었다. 내게 잘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내 잘못을 용서해 준 사람 또한 없었다.
두 마음이 늘 함께여서, 어떤 때는 좋아해서 미안한 건지 미안해서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어떤 마음이 먼저 솟았기에 그림자마저 이리 짙은 건지. 쉽게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처럼, 누군가를 향해 자라나는 마음이 죄스러웠다. 고백은커녕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미안해 울곤 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어떻게 죄가 되냐고 했던 그 사람은, 내가 조심스레 호감을 보이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함부로 대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 점이 좋았다. 그런 사람이 나 때문에 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절이 사라진 얼굴이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상식에서 벗어난 클레임을 받은 고객센터 직원 같았다. 진상이 된 고객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세상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듯 실없는 농담처럼 웃어넘기는 것. 농담이 아니라는 걸 이미 눈치 챘더라도, 그 순간과 앞으로의 관계를 망가뜨리지 않으려면 그런 허술한 위장이라도 필요했다. 내 자존심보다 상대의 당혹감이 더 원하는 말이었다. 뻔히 알면서도 난 항상 가장 해선 안 되는 짓을 하고 만다. 그렇게 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사람을 두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돌아서며 생각했다. 거봐, 죄가 맞잖아.
연애를 하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으세요. 사람들은 말한다. 놀이공원에 가고, 애칭을 만들어 부르고, 모닝콜을 하고, 통화하다 잠든 상대방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기념일을 보내고, 이어폰을 나눠 끼고 노래를 듣고, 여행을 떠나고, 취미를 공유하고, 사소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 했던 비밀을 말하겠다고. 그 많은 바람을 보며 생각했다. 보고 싶다 말하고 싶다고. 말도 안 되는 클레임을 거는 진상 고객이 아닌 세상 가장 반가운 손님이 되어, 보고 싶었다고, 조금의 미안한 마음도 없이 말하고 싶다고.

2018.02.09.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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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져. 너와 나를 아는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지금 헤어지면 후회하지 않겠냐고,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며 늘 말리던 친구도 이젠 아니라 했다. 더 이상 만나봐야 서로 힘들기만 할 거라고, 헤어져야만 한다고 누구보다 강하게 말했다. 사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끝내야한다는 걸. 사람 사이에 틀린 게 어디 있어, 그냥 다른 거지. 그래, 너와 난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너는 눈떠서 잠드는 순간까지 수시로 연락하는 사람이었다. 다투는 일이 생기면 서로의 감정이 풀릴 때까지 얘기해야 했다. 나는 각자의 하루를 보낸 뒤 그 끝에 연락하는 사람이었다. 서로에게 감정이 상할 때면 짧게라도 스스로를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너는 어딜 가든 사람들과 빠르게 친해지고 관계도 잘 이어갔지만, 나는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까 싶을 만큼 가까운 사람이 없었다. 너는 많은 대화를 통해 말을 골랐고 나는 오랜 고민 끝에 나온 문장만 말했다. 서로 다른 지점에서 무심함을 느끼며 서운해 했다. 그럼에도 좋아한다는 한 가지는 같아서, 모든 다른 점을 덮을 만큼 그 마음이 커서 여기까지 왔다.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뒤로 오해는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불협화음이 협화음이 된 건 아니었다. 이해한다는 말로 애써 서운함을 감추는 일만 반복됐다. 어쩌면 이해한다는 말은 너와 난 역시 다른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뜻이었는지 모른다. 차라리 네가 나쁜 사람이라면 나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다. 상종하지 못할 만큼 못된 사람이라면 좋겠다고, 그러면 오히려 헤어지기 쉬웠을 텐데, 미워하기 편했을 텐데, 두고두고 헤어지길 잘 했다고 생각할 텐데.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거란 걸 안다. 너와 난 너무 다르게 생긴 도형이고, 서로를 맞추려면 한 쪽이 아니라 양 쪽이 다 자신을 바꿔야 하는데, 이미 그건 안 된다는 걸 두 사람 다 너무나 잘 안다. 끊어내면 되는 관계다. 고민할 것 없이 헤어지면 두 사람 모두 더 상처 받는 일은 없을 거다. 나아질 거라 확신할 수 있다. 만나기 전부터 머리는 수없이 말렸던, 아주 당연한 일. 그럼에도, 그때도 하지 못한 일. 답을 알지만 쓸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눈앞에 빈칸을 채우면 더는 힘들지 않을 텐데, 결정적 패를 손에 쥐고도 내려놓지 못한다. 여전히 서로 너무 다른 너와 내가 딱 한 가지 같은 점이 있어서, 헤어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고, 어떻게든 찾아내야 한다고 있지도 않은 답을 찾고 있다.

2018.03.26.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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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홀로 깊은 밤입니다. 빛이 빠져나가면 바다의 바닥처럼 밤이 보여요. 아득한 하늘의 바닥이 땅을 덮습니다. 꿈틀대는 절벽과 반짝이는 소금이 쏟아질 듯 땅을 바라봅니다. 달은 등대 불빛처럼 바닥을 훑으며 지나고 밤은 계속해서 뒤로 밀려납니다. 가라앉고 뒤처진 것들과 함께 낮에서 가장 먼 곳까지. 더 깊고 더 늦게.
습관처럼 밤의 깊이를 잽니다. 가장 깊은 곳을 찾으면, 아무리 오랜 뒤에도 떠오르지 못할 만큼 깊은 곳을 발견하면 그곳에 묻히고 싶다던 사람이 있었어요. 하릴없이 익숙한 깊이만 맴도는 저는, 연락이 끊긴 다음부터 밤의 가장 깊은 바닥이 그 사람만큼 높아졌을까 늘 궁금했습니다.
안아주는 건 밤의 몫입니다. 밤의 품에서 부유하는 건 어린 시절의 유일한 놀이였습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이며 버릇입니다. 나는 사라질 듯 선명하게 바닥과 바닥 사이를 떠다닙니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조각이 되었다가 방 안을 메우듯 거대해집니다. 땅으로 스며들고 공기 중에 흩어지는 나를 봅니다. 내게 평온은 오래도록 그런 모양이었습니다.
낮은 늦을 줄 몰라서 항상 해일처럼 밀려옵니다. 가라앉고 뒤처진 것들을 밀쳐내며 재촉합니다. 평온은 비눗방울 같아서 차오르는 낮의 입김만 닿아도 부서집니다. 반짝임은 사라지고 찌르는 해와 파도치는 구름만 남습니다. 몸을 가린 그림자마저 빼앗긴 달이 도망치듯 바삐 걷습니다.
잠깐 육지에 나왔다 바닷길이 닫혀 돌아가지 못한 사람처럼 바다만 보며 서 있습니다. 집은 눈앞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다시 바닥을 마주하면 조금 더 멀리 가자고 습관처럼 다짐합니다. 뒤를 돌아본 누구도 보지 못할 만큼 늦고 떠오르지 않을 만큼 깊은 밤으로 가자고. 연락이 끊긴 그 사람을 찾아 달빛을 따라 밤의 바닥으로. 밤을 기다리며 되뇌어 봅니다.

2018.04.08.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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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랑하는 것만큼 무익한 것이 있을까요. 누가 그랬어요. 사랑이 밥 먹여주느냐고 하지만 밥 먹고 살고 싶게 하는 게 사랑이라고. 왜 난 안 그래요. 사랑할수록 나를 지우고 싶은 건 왜예요. 자꾸 잠을 못 자고, 수시로 멍해지고 재채기처럼 눈물이 나요. 갑자기 당신이 미웠다가 그런 내가 싫고, 나만 없으면 다 괜찮아질 것 같고 그래서 잠이 들면 깨고 싶지 않고, 또, 또…
아무리 생각해도 도움이 안 돼요. 잃어버린 게 없는데 자꾸 뭘 잃고 있는 기분이에요. 마음이 새어나가나 봐요. 무너지는 것보다 그 잔해가 당신에게 닿을까 봐, 그게 가장 무서워요. 악취를 숨기려 몸을 싸매듯 나를 감춰요. 좋아하게 된 날부터 난 당신을 멀리해야 했어요.
잠시 고였다 사라질 빗물이라 생각했는데 못이 되었어요. 흘려보낼 수 없는 마음이 썩어가요. 햇빛이 읽을까 적지 못하고 달빛이 들을까 말하지 못해요. 물이 땅을 녹이듯 자꾸만 안으로 파고들어요. 그래서 마음도 깊어진다고 하나 봐요. 처음엔 손가락 한 마디도 잠기지 않았는데 이젠 바닥이 보이지 않아요. 탁하고 깊은 못이 무섭고 부끄러워요. 감추려 발버둥 치는데 손을 휘저을 때마다 물결이 만져져요. 이미 난 못에 잠겼나 봐요. 움직일수록 물방울만 사방으로 튀어요. 난 어떡해요. 쓸데없는 마음이라, 쓸 데 없는 마음이라, 자꾸만 나를 지우고 싶어요.

2018.04.17.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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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죽지 못해 슬퍼하는 걸까요.
죽을 때를 놓쳤다며 매일 울어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소리 내 읽었어요.
요즘 제가 나누는 대화는 이것뿐입니다.

날 사랑한 적 없다는 거 알아요.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는 일에 익숙해졌어요.
습관이라 숨을 쉬고 병을 앓듯 혼자예요.
비가 오는 날은 소리 내 울어도 괜찮아요.

비문이 된 삶이 부끄러워 쓰지 못해요.
기억되는 건 슬프고 잊히는 건 외로워요.
어느 쪽이 더 익숙한가 가늠해 보지만
어느 쪽도 제가 할 일은 아니에요.

제본이 꺾인 책처럼
망설임의 흔적이 어제와 내일을 집어삼켜요.
오른쪽은 아무것도 적지 못한 채 젖은 페이지뿐이에요.
마침표는 번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2018.04.03.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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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블로그를 켜 글을 쓴다. 이웃은커녕 여태 한 명의 방문자도 없는 블로그. 여자는 6년째 이곳에 일기를 쓰고 있다.
사람들 앞에선 웃었지만 실은 그리 즐겁지 않았던 대화, 복사기 앞에 멍하니 서 했던 생각, 전철에서 사람들 틈에 끼여 우연히 본 앞 사람의 휴대전화 메시지 내용,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과 살며 한 번쯤 꼭 다시 만나길 바라는 사람의 이름, 잊고 싶지만 자꾸 떠올라 어디든 털어놓고 싶은 일, 간밤에 꾼 정신 사납거나 부끄러운 꿈 이야기. 말할 수 없거나 말하기 싫거나 말하기엔 너무 소소한 모든 이야기를 적었다. 시간이 축적될수록 블로그는 여자의 본질 같은 것이 되었다. 누구든 그곳에 올라온 글을 모두 읽는다면, 가까이 지낸 그 누구보다-어쩌면 그녀 자신보다 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순전히 편해서였다. 6년보다 더 긴 시간을 여자는 일기장에 일기를 써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일기장을 가지고 다니자니 왠지 부담스러웠고, 그렇다고 집에서만 쓰자니 시간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쓰려던 내용을 다 적지 못한 날이 많았고 아예 손도 못 댄 날도 늘어만 갔다. 꼬박 한 달을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보낸 뒤, 여자는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바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지 싶었다. 시작은 컴퓨터 문서 파일이었다. 휴대전화에 썼을 땐 메일로 보내 옮겼다. 손으로 적는 것보다 빠른 건 물론, 어디서든 쓸 수 있어 좋았다. 다만 휴대전화로 쓰는 횟수가 적지 않은 만큼 매번 글을 메일로 보내 그걸 문서 파일에 옮겨 붙이는 과정이 번거로웠다. 그러다 찾은 게 블로그였다. 휴대전화든 컴퓨터든 인터넷 접속만 되면 언제든 바로 글을 이어 쓸 수 있는 곳. 블로그는 여자에게 최상의 일기장이었다.
나중에야 안 거지만 가장 큰 장점은 숨기기 쉽다는 것이었다. 종이에 적은 글은 언제 누가 볼지 몰랐다. 일기장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으니까. 죽은 뒤를 생각하면 더없이 그랬다. 죽으면 모든 게 유품이 될 텐데, 가족 중 누군가는 분명 여자의 일기장을 읽을 터였다. 어쩌면 가족만이 아닐 수도 있다. 남은 사람들에게 떠난 사람의 기록은 별 것 아니고 상세한 것일수록 더 소중하게 느껴질 테니까. 그립고 슬픈 만큼 꼼꼼하게, 어쩌면 몇 번이고 읽을지도 몰랐다. 그 장면을 상상하자 여자는 소름이 돋아 견딜 수 없었다. 그날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그동안 적은 일기를 블로그에 옮겼고, 일기장은 모두 파쇄해 없었다. 블로그에 일기를 쓰려 새로 만든 계정이라 다른 때는 로그인도 하지 않았다. 다른 계정은 모두 휴대전화에 자동 로그인이 저장되어 있지만 이것만은 예외였다. 당연히 모든 글의 검색은 금지했다. 블로그에 글을 적다 죽지 않는 이상은 누가 여자의 일기를 볼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글을 비공개로 올리진 않았다. 블로그는 감춰져있지만 그 안에 글은 민낯을 훤히 드러낸 채였다. 검색은 되지 않지만 누군가 주소를 잘못 적다가, 혹은 여자가 모르는 어떤 방법을 통해 블로그에 들어온다면, 그동안 그녀가 적은 모든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럴 리 없고 혹 그러면 어떡하지 걱정하면서도 여자는 늘 묘한 기대를 해왔다. 이 블로그에 누군가 들어오진 않을까, 숨어 있는 이 글들을 누군가 읽어 주진 않을까, 그렇게 누구라도 자신을 발견해 주진 않을까.
6년째 0을 가리키는 방문자 수를 보고 안도와 실망을 동시에 느끼며, 여자는 오늘의 일기를 저장한다.

2018.04.05.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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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몸이 가볍게 느껴진 날이었다. 종일 잠에서 덜 깬 듯, 갑자기 중력이 약해지기라도 한 듯 나른다고 붕 뜬 느낌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내 몸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달리 아픈 곳은 없었다. 이마를 짚어도 뜨겁지 않았고, 춥지도 않았기에 그냥 몸이 좀 안 좋은가 했다. 집에 가면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일찍 자야지, 그럼 괜찮아지겠지. 그렇기에 끝나고 잠깐 보자는 네 말에도 망설임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네가 소스라치게 놀라기 전까진.
이마를 짚은 넌 사색이 되선 괜찮냐고, 몸이 이렇게 뜨거운데 종일 몰랐냐고 했다. 그 정도야? 약국 들려야 할까? 묻는 내게 약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고, 응급실에 가자고, 이러다 큰일 난다며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그때 네 손이 평소보다 따뜻하지 않아서, 아니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이마에 닿았을 때도 흠칫 놀랄 만큼 서늘했기에, 그제야 아 내가 지금 열이 많이 나는 구나 했다.
너를 만나기 전까진 내 몸이 다른 사람보다 차다는 것도 몰랐다. 겨울에 손발이 시리다는 생각이야 자주 했지만 계절과 상관없이 늘 몸이 찼다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었다. 네 손이, 품이 따뜻하다고 느꼈을 때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 줄 알았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제와 보면 순진하다 못해 멍청하지만 그땐 그랬다. 사람 체온이 다 거기서 거긴데, 더 차거나 따뜻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루 사이 계절이 달라지며 일교차가 유난히 컸던 가을의 첫 날, 왜 이렇게 춥게 입고 왔냐며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내게 메주고 옷깃을 여며주던 네가, 넌 몸이 차니까 더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 된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창틈으로 불어온 바람에 책장이 넘어가듯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계절이 바뀌었을 뿐인데 얼굴을 스칠 때면 흠칫 놀라던 시린 손도 아무 느낌이 없다. 아무리 두 손을 매만지고, 얼굴을 감싸고 이마를 짚어 봐도, 내 몸이 어떤지 모르겠다. 난 여전히 다른 사람보다 차가울까, 혹 열이 있는 건 아닐까. 둔하고 둔한 난, 너를 잃고 다시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2018.03.13.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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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게 옮은 병을 앓는다. 무방비하게 아프고 겨우 견디다 밤이 되면 신음한다. 병에 걸린 날부터 삶을 확인하는 방법은 고통뿐이었다. 아프지 않은 부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어제로 인해 아픈 난 그렇게 살아있다는 걸 확인한다.
몸은 거대한 충치가 되었다. 치료를 받아도 어딘가는 반드시 썩어 들었다. 병원을 옮기고 올바른 잇솔질을 배우고 이에 좋다는 약을 먹어도 마찬가지였다. 때우고 때우길 반복하며 어제보다 작아진 나는, 그럼에도 계속해서 아팠다. 아프지 않은 건 내 빈 공간을 메운, 썩은 부위를 채운 내 것이 아닌 것들뿐이었다. 내 것이 아닌 것들도 모두 채우면 고통도 사라질까, 그럼 그건 언제의 누구일까. 적어도 오늘의 나는 아닐 것이다.
조금 있으면 만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로 인해 병을 앓을 것이다. 혀끝으로 치아를 세듯 몸의 마디를 만진다. 아프지 않은 부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2018.01.29.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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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보면 다시 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애초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네가 좋아했기에,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싶다고-이왕이면 소설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다고 말해서니까. 교과서에 실린 작품 외엔 소설책 한 권, 시 한 편 읽은 적 없던 내가 문학동아리에 든 것도 너 때문이었다. 사랑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너와 알고 지내면서도 다른 사람을 만났고, 네게 만나는 사람이 생겼을 때도 질투 같은 건 느끼지 않았다. 그보단 동경에 가깝지 않았을까. 이 사람을 더 알고 싶다, 오래 곁에 있고 싶다는 감정. 모르겠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감정이 더 사랑에 가깝거나 누군가는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는지도.
3학년 1학기의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새벽까지 도서관 지하 열람실에 있다가 이제 좀 쉬어야겠다 싶어 책상에 엎드렸다. 그것도 잠시, 자세를 몇 번 바꾸다 이왕 자는 거 동방에 가서 눕는 게 낫겠다 싶어 일어났다. 여름이지만 온기를 모두 잃은 새벽은 춥기만 했다. 양팔을 감싸고 급히 동방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대부분의 시험이 끝나 이미 종강한 과목이 많았기에 학교는 조용했고, 복도는 조심스러운 발걸음도 크게 울렸다. 당연히 잠겼을 거라 생각해 번호키를 누르고 문을 열었는데 동방 안 쪽에 불이 켜져 있었다. 누가 있나 싶어 들어가 보니 나보다 놀란 표정의 네가 있었다.
종강 뒤풀이를 하다 차를 놓쳤다고, 택시는 차마 못 타겠어서 첫 차가 다닐 때까지 기다리려고 왔다고 했다. 자다 깬 기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 자던 걸 깨운 건 아니냐고 묻자 아니라고, 시험 기간에 문득 읽고 싶은 책이 생각나서 종강만 기다렸던 터라 지금 막 읽기 시작했다고, 그런데 막상 여유가 생기니 그렇게 당기진 않아서 읽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넌 책상 위에 놓인 책갈피 대신 야식집 전단지가 꽂힌 책을 가리켰다. 그냥 멍 때리고 있었네. 그렇지 뭐.
언제 잠이 들었더라. 누군 아직 시험에 리포트까지 남았는데 팔자 좋다는 괜한 핀잔을 시작으로 꽤 오래 잡담을 나눴다. 이미 며칠을 제대로 못 잤기에 눈은 자꾸 감겼고, 이젠 정말 자야겠다 싶어 급히 누웠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8시가 조금 넘어 네가 깨워서야 난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알람 맞추는 걸 보긴 했는데 왠지 내가 깨지 못할 것 같아 기다렸다고, 8시 전후로 알람이 세 번이나 울렸는데 난 매번 끄고 다시 잠들었다고 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은 날 보고서야 넌 동방을 나섰다. 남은 시험 잘 보라는 말과 아마 네가 덮어주었을 담요만 남기고.
흔한 학교 담요였지만 그날 잠에서 깨며 느꼈던 그 따뜻함은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남았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릎 언저리가 따스해질 만큼. 어쩌면 아직 내가 글을 쓰는 건, 그날의 온기를 잃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네 글을 읽고 싶다.

2018.02.18.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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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날이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지나는 차 때문에 머리카락이 쉴 새 없이 흩날렸다. 사납게 다가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불빛에 다리 끝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불빛에 일렁이는 강물은 꿈틀대는 거대한 뱀 같았다. 다리에서 표면까지보다 몇 배는 더 깊을 강의 속살이 까마득했다.
가볍게 결정한 건 아니었다. 몇 번을 빨아도 남는 주머니 속 먼지처럼 씻어낼 수 없는 생각이었다. 이따금 손가락 끝으로 동그랗게 매만지다가 꺼내 던져버리던. 그날도 습관처럼 손끝을 굴리다 주머니에서 손을 뺐는데, 손에 잡힌 게 아무것도 없었다. 먼지가 있다고 생각한 곳엔 뿌옇고 지저분하게 변해 풀어진 손가락 끝이 있었다.
편지는 쓰지 않았다. 누가 읽기는 할지, 기약 없는 글을 쓰는 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구차해지는 것도 지겨웠다. 그저 잠깐, 마지막으로 조금 더 아름다운 걸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특별히 생각나는 것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인도의 보폭은 좁고 난간은 낮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누군가는 차도든 난간이든 한 쪽으로 너무 가까이 붙을 수밖에 없지 않나 싶을 만큼 좁은 길. 어느 쪽이 더 위험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려울 것도 없이 그저 난간 밖으로 몸만 기울이면 될 것 같았다. 먼지를 던지듯 툭. 두 손으로 난간을 짚고 낮은 턱에 발을 딛고 올랐다.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인 채 저 멀리 건너편 다리를 보다가 눈을 감으려는데, 난간을 잡은 손 위로 무언가 떨어졌다. 손 등 위엔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물방울이 점점이. 이윽고 비가 쏟아졌다. 달리는 차보다 더 매섭게, 강바닥을 향해 비가 곤두박질쳤다. 비의 끝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는 선명하게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사납고 까맣고 차갑지 않나. 턱에서 내려와 난간을 잡은 손을 거뒀다. 순식간에 젖은 머리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아름다움은 멀고 사납고 까맣고 차가운 것은 사방에 있었다. 주머니에 넣지 않아도 손 끝엔 늘 먼지가 만져졌다. 머릿속에서 그 날의 난간을 수없이 오르며 어떤 때는 강하게 뛰어내리고, 또 어떤 때는 빗물에 미끄러져 떨어지며 지금의 내가 없을 상황을 그렸다. 무사히 다리를 벗어나는 장면은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다.
먹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 냉장고 구석에서 곰팡이가 번져가는 채소 쪼가리가 된 기분이다. 오늘도 난 차도와 난간 사이, 좁은 인도에 서 있다.

2018.02.22.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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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깨우기 전에 눈을 떠요. 그래도 조금 더 누워있고 싶어서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어요. 알람이 울리면 엄마가 방에 들어와 저를 깨워요. 씻고 나와 엄마가 꺼내놓은 옷을 입고 아침을 먹어요. 어제 챙겨놓은 가방을 메고 인사해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이사 오기 전엔 엄마가 늘 데려다줬지만 전학 온 뒤론 혼자 다녀요.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서 아파트 단지만 나서면 바로 길 건너가 학교예요. 아침마다 아주머니들이 나와 계셔서 위험하지 않아요. 사실 학교에 있을 때가 제일 펀해요. 수업은 다 아는 내용이라 재미없지만 그만큼 열심히 안 해도 돼요. 그냥 적당히, 숙제만 잊지 않고 시험 때만 신경 쓰면 괜찮아요. 그래도 성실히 듣는 척은 해요. 선생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니까요. 그보다 쉬는 시간이 자주 있어서 좋아요. 점심도 친구들이랑 먹을 수 있고요. 전에 다니던 학교에선 학원 다니는 애들이 별로 없어서 혼자 학원가는 게 너무 싫었어요. 엄마는 그런 거 부러워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다들 놀러 간다고 같이 가자는데 나만 못 가니까. 처음엔 부럽기도 했지만 나중엔 미안했어요. 여긴 학원 다니는 애들이 많아서 좋아요. 어느 학원이든 같은 반 친구들이 몇 명씩은 꼭 있고, 학교 끝나고 놀자는 애들도 없으니까 부럽거나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수업이 끝나면 학교 앞에 학원 차들이 와 있어요. 처음엔 차가 너무 많아서 찾기 어려웠는데 이젠 눈 감고도 찾아 탈 수 있어요. 매일 차들이 서는 위치가 같거든요. 기사 아저씨들끼리 정해놓은 규칙이 있나 봐요. 오늘은 수학학원 갔다가 심화반만 들렸다 집에 가요. 시간이 어중간해서 저녁은 집에 가서야 먹어요. 수학학원이 끝날쯤엔 배가 고프지만 심화반 선생님이 늘 빵을 챙겨주셔서 괜찮아요.
학원에서 쪽지 시험을 봤는데 세 문제나 틀렸어요. 여기 애들은 다 공부를 잘해서 시험 문제도 어려워요. 그래도 심화반 들으면서 백점도 몇 번 맞았는데, 오늘은 아는 문제도 두 개나 실수했어요. 이러면 숙제가 또 많아지는데 걱정이에요.
학원 차에서 내리면 엄마가 단지 앞까지 나와 있어요. 집에 돌아와 손을 씻고, 늦은 저녁을 먹고 책상에 앉아 예습을 하고 있으면 영어 선생님이 오세요. 캐나다에서 온 대학생이래요. 처음 만난 외국 사람이에요. 엄마랑 있을 땐 한국말도 엄청 잘 하시던데 저랑 있을 땐 안 그래요. 방금 막 한국에 온 사람처럼 영어만 써요. 그게 규칙이래요.
선생님이 가시면 옷을 갈아입고 숙제를 시작해요. 수학 숙제가 생각보다 많지만 그래도 1시 전에 다 끝내서 다행이에요. 내일 가는 논술이랑 피아노 학원 책을 넣고 가방을 마저 챙기면 엄마에게 검사를 맡아요. 자리에 누우면 엄마가 이불을 덮어주고 옆에 앉아요. 몰라서 틀리는 것보다 실수해서 틀리는 게 더 안 좋은 거라고, 이미 여러 번 들은 얘길 또 들을 줄 알았는데 엄마는 대신 내일모레는 실수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도 이사 온 뒤로 학교 시험은 늘 잘 봐서 다행이라고 잘하고 있다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요.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잘 자라며 불을 끄고 엄마는 방을 나가요. 깜깜한 방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내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에요. 엄마는 잘하고 있다는데, 오늘도 나는 없어요.

2018.03.17.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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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년에 두 세 명은 꼭 있는 이름이었다고 했다. 학기 초엔 누굴 부르는지 몰라 서로 헷갈릴 때가 많았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자연스레 성에 이름 첫 글자를 붙여 부르거나, 성까지 같은 경우엔 큰과 작은, 빠른과 느린, 때론 안경이나 숫자로 구분해 불렸다고 했다. 나 역시 처음 널 알았을 때, 같은 이름의 다른 얼굴을 서너 명은 떠올렸다.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검색창에 누군가의 이름을 쳤을 때 동명이인의 얼굴이 함께 나열되는 것처럼. 그중 꽤나 뒤에 추가된 너의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한 칸씩 앞으로 오더니, 결국은 첫 번째에 가장 크게 떠오르게 되었다. 무엇을 검색해도, 아니 검색을 하려 창만 열어도 가장 먼저 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전에도 빈번히 보던 이름이지만 널 만난 뒤엔 더 자주 접하게 된 기분이었다. 인터넷 기사 댓글 창에서, SNS에서, 어느 담벼락에 적힌 낙서에서, TV뉴스의 인터뷰 장면이나 심지어 평소엔 뭐가 지나가는지도 몰랐던 크레딧 명단에서, 너의 이름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누군지 얼굴도 모르면서 너와 같은 이름이라는 이유만으로 막연히 좋은 사람일 거라는 멍청한 생각도 했다. 보물찾기에서 한 번도 뭘 찾은 적 없던 내게, 네 이름은 너무나 찾기 쉬운 보물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이 많았던 전철역. 누군가 네 이름을 불렀다. 놀란 난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그곳에 넌 없었다. 낯선 얼굴의 누군가가 네 이름에 답했고, 얼결에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친 날 성급히 고개를 돌렸다. 너이길 바랐지만 네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시간은 관계를 바꾸고, 관계는 의미를 바꿨다. 여전히 네 이름은 너무나 많은 곳에 있는데, 난 그 하나하나에게서 고개를 돌리기 바쁘다. 아직 놀라 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무도 듣지 않는 변명을 한다. 잊기엔 너무 흔한 이름이라고. 그래서 그렇다고.

2018.01.30.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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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 수도 있어요. 전화를 몇 번이고 해봤는데 어떻게 매번 통화가 안 돼서요. 찾아갔을 때도 안 계셨고. 복지회 분은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라, 아니 이 정도면 확실하긴 한 건데 가장 중요한 본인 확인을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애초에 알려줘선 안 되는 정보였다. 본인 확인은 사실 여부와 더불어 만날 의사가 있는지 묻는 과정이니까. 그러니까 지금 그 사람은 내가 찾아간다는 사실을 모른다. 정상적인 상봉과정에선 있어선 안 되는 상황이다. 정상적인. 내가 조금 곧 죽을 몸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죽기 전에 생일 정도는 알고 싶었다. 어쩌면 몇 번은 불렸을 이름도. 태명이라도. 왜 버렸는지, 그 뒤로 어떻게 살았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어릴 땐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이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그래도 한 번은 얼굴을 마주하고 싶긴 했는지, 이름과 생일만이라면 직접 만날 필요가 없을 텐데도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기억이 없기에 차마 돌아간다고는 할 수 없는 곳, 고향에.
태어난 곳에 죽을 때가 되어서야 돌아간다니 연어가 따로 없군. 질 나쁜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더했다. 비행기를 탔을 때부터 느꼈던 불편함은 공항에 내리자 견딜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본능적인 끌림이나 익숙함 같은 건 없었다. 두 나라의 거리만큼이나 모든 것이 멀고 어색했다. 나와는 체형도, 피부와 머리, 눈 색도 달랐던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오다 이제야 비슷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왔는데, 거울 속에서나 볼 수 있던 모습을 주변 어딜 봐도 볼 수 있는데, 정작 느껴지는 건 이질감뿐이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만큼 지체할 수 없었다. 다행이랄지, 복지회 담당 직원은 어떻게 이 일을 계속할까 싶을 만큼 감정이입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중요한 순간에 감정이 앞서는 사람. 평소 같으면 가장 꺼림칙한 상대였겠지만 지금은 이만큼 좋은 사람도 없었다. 사정을 듣고는 망설임 끝에-아마 마음은 이미 기울었지만 그럼에도 이러면 안 된다는 어떤 직업윤리 같은 것이 걸리는 듯했다-주소를 알려 주었다. 나를 낳은, 그리고 채 한 달이 되기 전에 버린 여자가 사는 집, 지금 내가 선 이 문 앞에 아파트 호수를.
‘여자’가 복지회 사람을 먼저 만났다면 날 만나겠다고 했을까. 아니라고 했다면, 어떤 이유에선가 거절했거나 그럴 생각이라면, 지금의 난 얼마나 불편한 방문자일까. 정신없이 여기까지 왔지만 이게 정말 잘하는 짓일까. 나는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망설임도 잠시.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이 유일한 동력이 되어 여기까지 왔는데, 더 나빠질 게 뭐가 있다고. 어차피 돌아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으면서.
‘여자’가 거절했다면 그 직원은 당신 아이가 죽기 전에 꼭 한 번 보고 싶어 한다고, 한 번만 만나보시면 안 되냐고 울며 매달렸겠지. 난 또 그렇게 불쌍한 아이가 되었을 거고.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만큼 끔찍한 상황은 아닐 거란 생각에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게 위안이 되었다. 불필요한 생각을 숨에 실어 크게 내뱉는다. 초인종을 누르고 몇 번 입 안에서 굴렸던 말을 한다.
실례합니다.

2018.03.13.2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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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오던 차의 흐름이 끊겼다. 신호가 바뀌었나 보다. 아무리 바쁜 시간에도 정체되진 않지만 종일 쉬지 않고 차가 오가는 4차선 도로의 커브 길. 이곳이 내가 머무는 곳, 내가 죽은 자리다.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맞은편에서 덮쳐온-버스나 대형 트럭이었을-커다란 차와 조수석에 앉은 나, 거기까지다. 누구와 함께였는지, 어느 쪽이 차선을 넘은 건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이곳에 다른 누군가가 없는 걸 봐선 즉사한 건 나 한 명뿐. 뒷자리는 몰라도 운전자는 있었을 텐데, 병원에서 죽은 건지 아니면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죽었지만 서로를 못 보고 있는 걸 수도 있다. 나만 못 보고 있거나.
처음엔 달려오는 차를 보고 놀라 피하기도 했다. 눈을 떠 이곳이 어디고 내가 누군지를 채 생각하기도 전에 차들이 달려왔고, 피하기도 전에 가장 먼저 달려온 차가 내 몸을 통과해 갔다. 그렇게 두 대, 세 대. 머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내리고, 눈을 떴을 땐 이미 한 무리의 차가 지나간 뒤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난 어떻게 멀쩡한 거지. 긁힌 자국 하나 없었다. 경적을 울린 차도 없었다. 일단 도로를 벗어나야겠다 싶어 걸음을 떼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족쇄가 묶여 땅에 박혀 있는 것처럼, 아무리 사방으로 움직여도 한 차선의 절반 정도 되는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내가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을 때, 다시 차들이 달려왔다.
네 번의 차 무리를 보내고서야 혹시-하고 생각했고, 한 대의 대형트럭이 날 덮쳐오며 사고 장면이 떠올랐을 땐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여기서 죽었다는 걸.
간헐적으로 달려와 내 몸을 훑고 가는 자동차 무리. 바람은커녕 차가 지나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아직 눈은 온 적 없지만 비 역시 맞는 느낌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살아있는 감각이라고는 시각과 청각뿐. 그나마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좁아 볼 수 있는 건 그저 이 주변과 지나는 차뿐이다. 주변이라고 해봐야 가로등과 나무, 얕지만 그 너머가 보이지 않는 정도의 언덕만 있을 뿐. 사람은 물론 들짐승조차 보이지 않는다. 결국 지루하고 지루한 하루의 반복에서 달라지는 거라곤 지나가는 차들뿐. 며칠 째 종일 서서 달려오고, 스치고, 멀어지는 차를 봤다. 힘들거나 졸리다는 느낌도 없어 그렇게 내내. 이럴 거면 차라리 잠이라도 마음껏 잘 수 있으면 했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 긴 잠을 잔다면 그건 그냥 죽음 그 자체가 아닐까. 물론 지금 몸소 체험하고 있듯, 죽음은 잠과는 동떨어진 전혀 다른 모양새지만.
그저 인상만 남을 만큼 빠르게 지나는 차들을 보며 생각한다. 저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 코너를 지나 다음 신호등이 있는 곳엔, 아마 내가 가려다 끝내 도착하지 못한 그곳엔 무엇이 있을까. 그 반대편, 내가 온 곳엔 또 뭐가 있을까. 내가 탄 차가 차선을 넘은 거라면 방향은 반대가 되겠지만. 나와 함께 가던 사람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여전히 날 생각하며 슬퍼할까. 날 기억은 할까, 나도 그 사람 기억 못하는데. 그렇다면 얼마나 오래, 기억해 줄까. 끝내 알 수 없는 물음이 헛되이 이어진다. 그래선 난,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걸까. 다시 한 무리의 차가 달려온다. 신호가 바뀌었나 보다.

2018.02.13.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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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세탁기가 있었다.
들어가 앉아 문을 닫고 온 몸이 떨릴 만큼 서럽게 울고 나오면
조금은 깨끗해진 기분이었다.
햇볕 대신 형광등 아래 누워 물기를 말리다 보면
세탁기 안에서 흘려보낸 것들은 어디로 갈까 궁금하기도 했다.
바싹 마른 마음을 고이 개 내일을 준비한다.
잠이 들면 가로등이 켜진 좁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삐 돌아가는 세탁기들이 줄지어 선 마을을 헤매곤 했다.
울음소리에 흔들리는 마을이 있고
쉽게 더러워지는 내가 있었다.

2018.01.28.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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