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치 커피를 마시고 그만큼의 잠을 접어 둔다. 며칠이 되지 않아 잠은 한 권의 책이 된다. 책이 된 잠을 책장에 꽂는다. 커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책장에 꽂힌 잠은 조금도 허투루 사라지지 않고 남아 나를 기다린다. 틈틈이 쌓인 잠을 한 권씩 꺼내어 풀어 보낸다. 허나 책은 사라지는 것보다 빠르게 늘어만 간다. 몇 달의 한 번, 제 몸이 버거워진 책장은 내게 책을 토해내며 쓰러진다. 그 아래 깔린 난 어떻게도 일어날 수가 없다. 책이 되었던 잠은 다시 반투명한 관이 된다. 난 그저 쌓인 잠이 흘러가길 기다리며 바닥에 낮게 엎드려 있을 뿐이다.
간신히 빈 책장을 치우고 일어나면 사라진 잠만큼 낯선 시간이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뺨을 때리고 발목을 잡아끌며, 때론 소매 끝에 매달려 나를 불편하게 한다. 시간은 언제나 남이었다. 낯설게 다가와 냉정하게 지나간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추억하는 건 나뿐이다. 늘 곁을 스쳐가면서도 나와는 무관하게 흘러간다. 타인은 지옥이라고 사르트르가 말했다. 내겐 시간이 그렇다.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매정할 순 없다. 하루만큼 죽어간다. 커피를 마시거나 잠을 자도 죽음을 피해갈 순 없다. 어쩔 수 없이 쌓인 잠을 비워내야 하는 것처럼 매순간 죽음은 내게 다가온다. 아니 죽음을 향해 내가 떨어져 간다. 어쩌면 계속해서 쌓이는 잠의 본질이 죽음인지도 모른다. 접히고 책이 되어 책장을 메우고 하나의 벽을 가리면서 잠은 점점 더 뚜렷한 죽음이 된다. 반투명했던 관이 선명해진다. 나를 덮치는 것은 결국 죽음,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다가가고 있는 그것이다. 오늘도 방 깊은 곳에 새로운 책을 한 권 꽂는다.

2014.11.08.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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