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추위에 몸을 떨다 눈을 떴다. 실내엔 아무런 조명도 없었다. 형광등이 천장에 줄지어 매달려있었지만 어느 하나 불이 켜져있지 않았다. 왼편 창으로 담 너머에 세워진 가로등과 도로를 지나는 차의 불빛이 비춰 남자는 간신히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높은 천장과 고스란히 드러난 철골, 세 줄로 길게 매달린 형광등, 투박하게 늘어선 전선과 장판 없이 페인트만 대충 칠해진 바닥, 조립식 벽으로 막힌 오른쪽 벽과 예닐곱 명은 동시에 오갈 수 있을 듯 넓은 문, 학교 교실 세 개는 합쳐놓은 듯 넓은 공간이었다. 아, 공장이구나. 그제야 남자는 자신이 있는 곳을 깨달았다.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내놓으라할만큼 유명한 브랜드의 기타 공장이었다. 두 달 가량 아르바이트를 해 기타를 장만한 스무 살 청년이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첫 번째 기타를 자랑하며 락은 저항이라고 큰 소리 칠 때, 남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일해야 했다. 공장의 창문은 모두 막혀있었다. 높으신 누군가가 일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알 수 없도록 바깥을 보지 못하게 모든 창을 막아버렸다. 몇 시간에 한 번, 담배라도 한 개비 피우기 위해 밖에 나가야만 하늘이 밝고 어두움을 알 수 있었다.
공장의 소음 속에서 기타가 만들어졌다. 기타를 만드는 곳이었지만 정작 일하는 사람들은 소음 때문에 귀마개를 해야 했다. 남자는 그때 공장이 내는 소리를 울음이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사라진 지금, 남자는 알았다. 그때 공장은 그저 자신의 소리를 내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귀를 막아야할 만큼 시끄러웠지만 그때의 소리엔 힘이 있었다. 속을 들어내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자 공장은 정말 울기 시작했다. 창이 막혔는데 밤은 어찌 아는 지, 공장은 밤마다 자신의 남은 뼈 속에서 바람을 굴리며 울었다. 공장의 진짜 울음소리를 들으며, 내쫓기고 죽어가는 것은 사람만이 아님을 남자는 깨달았다.
해고는 빠르게 이뤄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깨닫기도 전에 남자를 비롯한 모두가 해고 통보를 받았고, 공장은 하루 아침에 가동이 중단되었다. 며칠만에 생산장비는 모두 차에 실려 어딘가로 떠났고 공장은 텅 빈 속을 드러내야했다.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던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본사 앞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에서,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공장에서. 이들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며 목소리는 점점 커졌지만 정작 이 소리를 들어야했던 사장은 귀를 막은 듯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아무것도 몰랐다. 누군가는 사장을 욕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남자를 비롯해 시위를 하는 해고 노동자들을 욕했다. 남자는 누가 옳은 것인지, 사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면 저 사람들은 왜 우리를 욕하는 건지, 혹시 자신이 정말 욕먹을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을 비롯해 이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왜 잘려야 했는지, 이 공장이 왜 문을 닫아야하는지 역시 알 수 없었기에, 누구도 납득할만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기에 남자는 이곳에 남았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여전히 남자는 밤에 눈을 뜰 때면 이곳이 낯설었다. 텅 비어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 하는 공장이, 이곳에서 잠이 들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자신이, 이제 곧 6년이 되어 가는데 그 긴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이 지리멸렬한 상황이 너무 낯설고 무서웠다. 팽팽하던 기타 줄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 할 정도로 느슨하게 풀어졌다. 이대로 두 번 다시 악기가 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남자는, 공장은 두렵다.

2012.07.21.05:15.
Radiohead Exit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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