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죽은 자리엔 어떤 꽃이 필까 상상해 봅니다. 신화나 전설이 아니어도 모든 죽음 뒤에 꽃이 남겨진다면, 제가 죽은 자리엔 어떤 꽃이 필까요. 아는 꽃이 많지 않아 몇 송이 떠올리지도 못하고, 어울리는 꽃 역시 찾지 못했습니다. 이따금 보도블록 사이에 홀로 핀 꽃을 보며 혹시 이곳에서 누군가 죽었던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코가 아찔하고 눈이 어지럽도록 꽃이 만발했던 그곳에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던 걸까, 무슨 일이 있던 걸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당신과 닮은 꽃을 가져오세요, 어느 전시회에서 메모지에 적힌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죽은 자리에 핀 꽃은 그 사람이 살아있었을 때를 닮았을까요, 아니면 전혀 상관없는 모습일까요. 같은 꽃으로 피어난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합니다. 살아서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녔든 죽은 자리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좁힐 수 없는 거리에 피게 된 꽃 두 송이를 생각합니다. 제가 죽은 자리에선 어떤 꽃이 필까요. 어디에 피어야 가장 아름다울까요. 아니, 조금이라도 덜 추할 수 있을까요. 어디로 숨어야 쉽게 꺾는 손과 무신경한 발을 피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얼마나 많은 죽음을 꺾거나 밟아 왔을까요. 당신 창가에 봄볕과 함께 그림자로 드리우는 꽃이 되는 상상을 해 봅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고 햇빛조차 잊어버린 채 피어난 꽃 한 송이를 그려 봅니다. 혹 당신이 먼저 떠난다면, 그 자리 어디든 찾아가 피어난 꽃 한 송이를 마냥 바라보다가, 시들고 떨어지는 꽃잎 한 장 한 장을 조심스레 두 손에 모아 끌어안은 채, 같은 자리에서 또 다른 꽃이 되어 피어나는 저를 떠올려봅니다. 꽃을 보다 꽃이 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2017.08.20.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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