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아직도 붓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어요.
이젠 처음 스케치가 뭐였는지, 어떤 색을 칠하려 했는지 모르겠어요.
의자 끝이 닳는지 저는 점점 낮아지고 그림은 높아만져요. 두터워진 물감이 제게 다가와요.
시간을 먹고 자란 물감의 무게가 버거워 이젤이 비명을 질러요.
의자와 이젤 중 어느 것이 먼저 무너질까요. 죽은 나무를 괴롭히며 걱정합니다.
하얀 얼굴들이 늙어가는 저를 바라봐요. 아무 것도 없는 하얀 눈 두덩이가 무서워 고개를 돌려 놓았어요.
어제 꿈에선 줄지어 선 뒤통수들이 제 그림을 나무랐어요. 분명 뒷모습인데 모든 각도의 얼굴이 보였어요.
왜 조심하라고 말해주지 않으셨어요. 거울보다 더 선명한 이 하얀 얼굴들을 어떡해야 해요.
선생님 저는 언제쯤 포기할 수 있을까요.

2019.03.19.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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