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도착해서야 사람들과 첫 마디를 나눈다. 가장 큰 변화는 대화였다. 혼잣말이 늘고 나누는 말은 줄었다.
쉴 틈을 줄여 전보다 조금 더 바쁘게 일한다.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들어오는 길엔 꼭 한두 명씩 밝은 표정으로 통화 중인 사람들이 눈에 띈다. 친구나 가족일 수도, 혹은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는데 쉽게 연인과 통화 중일 거라 단정 짓곤 괜히 의식해 외면한다. 사무실에 돌아와 앉아선 휴대 전화의 빈 화면을 물끄러미, 할 일을 잃고 널부러진 충전 케이블을 본다. 충전할 일이 줄었다. 원래 이렇게 배터리가 오래 갔던가. 시간은 조금 빠르게, 그 틈은 더 넓게 흘렀다. 초조해지는 일이 줄었고 휴대 전화 화면을 한 번씩 켜 보던 습관은 공연히 시간만 확인하게 했다.
조금 늦은 퇴근을 하며 오늘은 어디서 저녁을 먹을까 고민한다. 먹을 수 있는 메뉴, 특히 저녁 외식 메뉴의 선택지가 줄었고, 그래서 늘었다. 2인분씩 파는 음식은 먹을 수 없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내 마음대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잠시 식당가를 걸으면 방황하다 좋아하지만 한동안 먹지 못했던 메뉴로 결정해 식당에 들어선다. 그러고 보면 전에도 오려면 올 수 있던 식당인데 왜 안 그랬을까 의아하다. 혼자 저녁 먹는 일이 아예 없던 것도 아닌데 왜. 꽤 많은 일이 그랬다. 혼자인 순간에도 혼자라 생각하지 못했던 날들. 하나를 당연히 여기다 다른 여럿을 잊었던 시간. 결국 하나만 남은 지금.
즐겨가던 카페에 들리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온다. 손님이 없을 땐 주인과 꽤 길게 이야기를 나눌 만큼 단골이었지만 이젠 찾아가는 것도 어렵지 싶다.
이제 오늘은 다른 사람과 더 대화할 일이 없구나, 현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생각했다. 씻고 나와 냉장고에서 맥주 캔을 꺼낸다. 일주일에 한 번을 사도 부족했는데 이젠 2주가 되도록 아직 몇 캔이 남았다. 영화 사이트를 켜 추천 작품을 보다가 중간중간 섞인,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분명 취향이 아닌 작품을 보며 이걸 어쩔까 고민한다. 시청 목록을 한 번 다 지울까, 다른 작품을 많이 보면 자연스레 밀리지 않을까. 목록 삭제 버튼까지 갔다가 아니오를 누르고 이전 메뉴로 돌아온다. TV 시리즈 하나를 선택해 재생하고 혼자 대화도 감탄사도 아닌 어정쩡한 말을 몇 번 하다 이내 조용히 화면만 본다.
휴대 전화는 집에 와 책상에 올려놓은 그대로다. 주인을 따라 말이 줄어든 휴대 전화와 함께 고요히 하루가 지나간다. 공들여 그리던 풍경화의 시간대를 바꿔 수정하듯, 함께 했던 시간 위에 다시 각자의 일상을 덧칠한다.

2018.02.19.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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