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바지런히 방안을 오가며 옷을 정리한다. 남자는 거실 소파에 앉아 여자를 기다린다. 이별을 받아들이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몇 번의 결심을 반복한 끝에 사진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정리하기로 했다. 결정을 마치고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마지막 미련을 접어 보내기로 했다.
여자는 한 벌 한 벌 정성껏 옷을 개었다. 그녀가 마음을 담아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느린 동작이었지만 서랍은 금세 텅 빈 속을 드러냈다. 새것과 다름없는 옷들이 곱게 개여 상자에 담겼다. 많아야 두 번 입었을까.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여러 벌, 그중엔 선물로 받은 것도 꽤 있었다. 사람들의 축복은 정리해야 할 짐이 되었다. 무안하게 고개를 돌린 옷가지 위에 마지막으로 한 번 꺼내 보지 못했던 신발을 올려놓았다. 뚜껑을 닫은 뒤 그 위를 한 번 쓰다듬던 여자는 끝내 상자를 부여잡고 고개를 떨궜다. 여자의 울음소리를 듣는 남자의 마주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맞은편에 놓인 텔레비전 화면엔 소파에 앉아 겨우 눈물을 참는 남자의 모습이 비쳤다.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받아주셔서 저희가 더 고맙죠. 좋은 곳에 쓰였으면 좋겠네요.
짧은 인사를 주고받고 두 사람은 빈손이 되었다. 모든 물건, 이라고 했지만 상자는 그 주인만큼이나 작고 가벼웠다. 두 사람은 상대를 먼저 들여보내고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분명 짐을 든 사람이 걸어가고 있음에도 두 사람 눈에는 상자와 그 안에 담긴 물건들만 떠가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 작은 옷과 신발이, 그 모든 걸 가졌어야 할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소리 없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잘 가렴 아가야.

2013.10.05.27: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