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라의 영화를 봤어요.
발음을 받아 적을 수도 없는 말들이 무해하게 흘러가요.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시선을 내리는 건
혹시 자막이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해서예요.

받아 적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꼭꼭 씹으며
익숙한 웃음을 지어요.
사람들은 절 잘 웃는 사람이라 했어요.
웃음만큼 무해한 반응은 없으니까요.

결핍은 시간이 지나도 새로운 발자국을 남겨요.
당연한 기억이 없어 추억은 저를 걸러내요.
영사기 앞에 선 기분이에요.
거대한 그림자가 발목을 잡고 있어요.

스크린도 아닌데 저는 왜 여기 서 있을까요.
배우가 되기엔 서툴고
관객이 되기엔 가난해서야.
한 줄의 자막이 새겨집니다.

아 그렇구나,
낯선 땅에서 모국어를 들은 사람처럼 웃어요.

2018.03.27.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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