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는 말 대신 미안하다고 썼다. 외워지지 않는 외국어를 반복해 적는 학생처럼 마음 가득 빼곡히.
나는 늘 좋아해서 미안한 사람이었다. 처음 고백했던 날 알았다. 원치 않는 애정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되는지. 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그 뒤로 지금까지 난 어김없이 가해자의 편이었다. 내게 잘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내 잘못을 용서해 준 사람 또한 없었다.
두 마음이 늘 함께여서, 어떤 때는 좋아해서 미안한 건지 미안해서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어떤 마음이 먼저 솟았기에 그림자마저 이리 짙은 건지. 쉽게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처럼, 누군가를 향해 자라나는 마음이 죄스러웠다. 고백은커녕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미안해 울곤 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어떻게 죄가 되냐고 했던 그 사람은, 내가 조심스레 호감을 보이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함부로 대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 점이 좋았다. 그런 사람이 나 때문에 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절이 사라진 얼굴이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상식에서 벗어난 클레임을 받은 고객센터 직원 같았다. 진상이 된 고객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세상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듯 실없는 농담처럼 웃어넘기는 것. 농담이 아니라는 걸 이미 눈치 챘더라도, 그 순간과 앞으로의 관계를 망가뜨리지 않으려면 그런 허술한 위장이라도 필요했다. 내 자존심보다 상대의 당혹감이 더 원하는 말이었다. 뻔히 알면서도 난 항상 가장 해선 안 되는 짓을 하고 만다. 그렇게 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사람을 두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돌아서며 생각했다. 거봐, 죄가 맞잖아.
연애를 하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으세요. 사람들은 말한다. 놀이공원에 가고, 애칭을 만들어 부르고, 모닝콜을 하고, 통화하다 잠든 상대방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기념일을 보내고, 이어폰을 나눠 끼고 노래를 듣고, 여행을 떠나고, 취미를 공유하고, 사소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 했던 비밀을 말하겠다고. 그 많은 바람을 보며 생각했다. 보고 싶다 말하고 싶다고. 말도 안 되는 클레임을 거는 진상 고객이 아닌 세상 가장 반가운 손님이 되어, 보고 싶었다고, 조금의 미안한 마음도 없이 말하고 싶다고.

2018.02.09.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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