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블로그를 켜 글을 쓴다. 이웃은커녕 여태 한 명의 방문자도 없는 블로그. 여자는 6년째 이곳에 일기를 쓰고 있다.
사람들 앞에선 웃었지만 실은 그리 즐겁지 않았던 대화, 복사기 앞에 멍하니 서 했던 생각, 전철에서 사람들 틈에 끼여 우연히 본 앞 사람의 휴대전화 메시지 내용,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과 살며 한 번쯤 꼭 다시 만나길 바라는 사람의 이름, 잊고 싶지만 자꾸 떠올라 어디든 털어놓고 싶은 일, 간밤에 꾼 정신 사납거나 부끄러운 꿈 이야기. 말할 수 없거나 말하기 싫거나 말하기엔 너무 소소한 모든 이야기를 적었다. 시간이 축적될수록 블로그는 여자의 본질 같은 것이 되었다. 누구든 그곳에 올라온 글을 모두 읽는다면, 가까이 지낸 그 누구보다-어쩌면 그녀 자신보다 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순전히 편해서였다. 6년보다 더 긴 시간을 여자는 일기장에 일기를 써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일기장을 가지고 다니자니 왠지 부담스러웠고, 그렇다고 집에서만 쓰자니 시간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쓰려던 내용을 다 적지 못한 날이 많았고 아예 손도 못 댄 날도 늘어만 갔다. 꼬박 한 달을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보낸 뒤, 여자는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바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지 싶었다. 시작은 컴퓨터 문서 파일이었다. 휴대전화에 썼을 땐 메일로 보내 옮겼다. 손으로 적는 것보다 빠른 건 물론, 어디서든 쓸 수 있어 좋았다. 다만 휴대전화로 쓰는 횟수가 적지 않은 만큼 매번 글을 메일로 보내 그걸 문서 파일에 옮겨 붙이는 과정이 번거로웠다. 그러다 찾은 게 블로그였다. 휴대전화든 컴퓨터든 인터넷 접속만 되면 언제든 바로 글을 이어 쓸 수 있는 곳. 블로그는 여자에게 최상의 일기장이었다.
나중에야 안 거지만 가장 큰 장점은 숨기기 쉽다는 것이었다. 종이에 적은 글은 언제 누가 볼지 몰랐다. 일기장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으니까. 죽은 뒤를 생각하면 더없이 그랬다. 죽으면 모든 게 유품이 될 텐데, 가족 중 누군가는 분명 여자의 일기장을 읽을 터였다. 어쩌면 가족만이 아닐 수도 있다. 남은 사람들에게 떠난 사람의 기록은 별 것 아니고 상세한 것일수록 더 소중하게 느껴질 테니까. 그립고 슬픈 만큼 꼼꼼하게, 어쩌면 몇 번이고 읽을지도 몰랐다. 그 장면을 상상하자 여자는 소름이 돋아 견딜 수 없었다. 그날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그동안 적은 일기를 블로그에 옮겼고, 일기장은 모두 파쇄해 없었다. 블로그에 일기를 쓰려 새로 만든 계정이라 다른 때는 로그인도 하지 않았다. 다른 계정은 모두 휴대전화에 자동 로그인이 저장되어 있지만 이것만은 예외였다. 당연히 모든 글의 검색은 금지했다. 블로그에 글을 적다 죽지 않는 이상은 누가 여자의 일기를 볼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글을 비공개로 올리진 않았다. 블로그는 감춰져있지만 그 안에 글은 민낯을 훤히 드러낸 채였다. 검색은 되지 않지만 누군가 주소를 잘못 적다가, 혹은 여자가 모르는 어떤 방법을 통해 블로그에 들어온다면, 그동안 그녀가 적은 모든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럴 리 없고 혹 그러면 어떡하지 걱정하면서도 여자는 늘 묘한 기대를 해왔다. 이 블로그에 누군가 들어오진 않을까, 숨어 있는 이 글들을 누군가 읽어 주진 않을까, 그렇게 누구라도 자신을 발견해 주진 않을까.
6년째 0을 가리키는 방문자 수를 보고 안도와 실망을 동시에 느끼며, 여자는 오늘의 일기를 저장한다.

2018.04.05.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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